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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감독, 칸 황금종려상 수상…‘세계 감동시킨 힘’의 배경은?
    봉준호(오른쪽) 감독이 5월 25일 국내외 기자들 앞에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고 송강호 배우와 함께 기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대한민국 봉준호(51)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봉 감독은 2019년 5월 25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세계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다.   봉 감독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로 수상한 한국영화 감독이며, 황금종려상은 최초로 수상했다. 봉 감독은 2006년 <괴물>을 시작으로 2008년 <도쿄!>, 2009년 <마더>, 2017년 <옥자> 이후 5번째 찾은 칸에서 가장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봉 감독의 세계 최고 권위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다.   <기생충>은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고액 과외 선생이 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루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봉준호가 호화로운 볼거리와 풍자적인 서스펜스 드라마로 칸에 귀환했다”고 보도했다. 또 BBC는 “<기생충>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부족했던 모든 것이다. 촘촘하고 오락적이며, 완벽한 페이스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기생충>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의 감상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 심사위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른 여러 개의 장르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리고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긴급하고 우리 모두의 삶에 연관이 있는 그 무엇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재미있고 웃기게 이야기한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봉 감독은 이날 수상 소감을 통해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놀라운 모험이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영화 <기생충>은 5월 30일 개봉돼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세계미래신문>이 <아시아경제> 등 국내외 보도를 토대로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작품세계를 특별 분석해 본다.   봉준호 감독은 2003년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는 스타 감독이 되었다. <사진=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의 특별한 힘: 꿈과 목표, 그리고 열정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출력과 예측 불허의 상황 설정, 위트 있는 대사,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등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이로 인해 황금종려상 수상은 칸 영화제 기간 내내 유력하게 점쳐졌다. <기생충>은 프랑스 시간으로 지난 5월 21일 오후 10시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이후 외신과 평단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극찬하며 수상의 기대감을 높였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소감의 자리에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손으로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봉 감독의 영화인생은 12세 때부터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 소심한 성격으로 친구가 많지 않았던 그는 영화비디오를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봉 감독의 꿈과 목표는 한국영화사 100년이 되는 2019년 5월 성취되었다. 그가 세계인을 사로잡고 세계적 영화감독이 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봉준호 감독은 꿈과 목표를 세우고 끈질기게 도전하였다. 봉 감독은 12세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스스로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어린 시절 꿈의 성취를 위해 중고 비디오점들을 돌아다니며 희귀한 외국영화들을 찾아보았다. 또한 미술을 전공한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몰래 들어가 디자인 관련 외국 서적들을 보면서 매일 그림을 그렸다. 이는 훗날 그가 영화를 만드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둘째, 봉준호 감독은 현실과 상상, 창의를 통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했다. 그는 유년 시절 친구가 많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고독의 시간을 상상력으로 채웠고, 그의 이런 상상력은 결국 영화 창작의 에너지로 발전했다. 봉 감독은 특히 혼자 보내던 시간, 영화 콘티를 제작해 보기도 했다. 이것이 무기가 되어 직접 영화 콘티 작업을 한다. 콘티는 영화제작의 정교한 설계도로 탄탄한 구성이 됐다.   셋째, 봉준호 감독은 영상을 통해 한국적 특수상황을 세계 보편적 정서와 가치, 철학, 삶의 문제로 부각시켰다. 그는 한국적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친구들과 ‘노란문’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동아리를 통해 1993년 6mm카메라로 찍은 <백색인>을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의 한 장면. 봉 감독은 이 작품의 흥행으로 천만관객 감독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영화 괴물>   ◆ 봉준호 감독의 작품철학: 한국사회 문제 상상과 창조   봉준호 감독의 힘과 영화의 세계는 <백색인>에 압축적으로 상징화되었다. <백색인>은 ‘화이트 칼라’ 주인공이 달동네를 헤매게 되고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줍게 되면서 시작되는 영화다. 한국사회의 계급 문제를 직접적으로 영상에 담았다. 이 영화는 거의 대사가 없다. 이미지와 배우의 액션으로 진행되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단편영화의 스타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봉 감독은 대학 졸업 후 충무로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연출부를 거쳐 1997년 <모텔 선인장> 조연출로 현장을 경험했다. 1999년엔 <유령>의 각본을 썼다. 이어 감독으로 본격 데뷔하여 한국 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자기 시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0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홍콩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차지했다.   봉 감독은 2003년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명실상부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는 스타 감독이 되었다. 전국 526만 관객동원으로 2004년도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 역대 한국영화흥행순위 13위(2018)에 올랐다. 봉 감독은 나아가 2006년 세번째 장편영화 <괴물>로 ‘천만영화’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다. 2017년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영화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미합작영화 <옥자>를 내놓았다.   봉준호 감독은 마침내 2019년 5월 <기생충>으로 세계 최정상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12세에 세웠던 꿈과 목표를 39년만에 이룬 것이다. 이것은 봉 감독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영화 100년사에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꿈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한국적 현실 위에서 상상과 창의, 열정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봉 감독의 성공에는 특히 송강호 같은 든든한 배우들이 오래 동안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봉 감독은 수상 영광을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 송강호”에게 돌리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다. <사진=영화 설국열차>   ◆ 봉준호 감독과 미래영화: 미래이슈 다룬 <괴물2> 기대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의 문제다. 그는 지금까지 계급적 모순으로 인한 빈부격차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 그의 영화들은 그래서 냉혹한 현실에 앵글을 맞추고 있다. 첫 작품 <백색인>은 물론 대표작 <설국열차>, <기생충> 등 모두가 계급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선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봉 감독의 작품에는 ‘미래’가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나 과거 또는 현재의 계급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은 모두 미래의 결과들이다. 그러므로 봉 감독이 계급문제의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미래의 계급문제를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미래전략원의 한 관계자는 “불평등, 계급, 빈부격차 등은 미래의 매우 중요한 이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봉 감독은 지금까지 경험 또는 상상의 한 조각을 일단 머릿속에 필름의 한 장면처럼 기록했다. 즉, 주로 일상생활에서 보거나 겪은 장면을 기억했다가 영화에 녹였다. 영화 <괴물>의 경우 봉 감독이 고등학생 시절 집에서 창밖으로 잠실대교를 내다보다가 교각에 뭔가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것을 본 기억으로부터 발화한 영화다. 그의 많은 영화에서 이 같은 명장면이 연출됐다.   봉준호 감독은 이제 세계 최고상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 그러나 그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미래 이슈를 꼭 다루어야 할 것이다. 영화거장이 된 봉 감독이 인류의 대재앙이 될 미래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빈부격차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더구나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기 때문에 더욱더 미래문제를 현재의 문제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괴물2>나 <설국열차2>의 새로운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 인간의식
    • 문화
    2019-05-26

미래전략 검색결과

  • 봉준호 감독, 칸 황금종려상 수상…‘세계 감동시킨 힘’의 배경은?
    봉준호(오른쪽) 감독이 5월 25일 국내외 기자들 앞에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고 송강호 배우와 함께 기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대한민국 봉준호(51)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봉 감독은 2019년 5월 25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세계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다.   봉 감독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로 수상한 한국영화 감독이며, 황금종려상은 최초로 수상했다. 봉 감독은 2006년 <괴물>을 시작으로 2008년 <도쿄!>, 2009년 <마더>, 2017년 <옥자> 이후 5번째 찾은 칸에서 가장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봉 감독의 세계 최고 권위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다.   <기생충>은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고액 과외 선생이 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루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봉준호가 호화로운 볼거리와 풍자적인 서스펜스 드라마로 칸에 귀환했다”고 보도했다. 또 BBC는 “<기생충>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부족했던 모든 것이다. 촘촘하고 오락적이며, 완벽한 페이스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기생충>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의 감상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 심사위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른 여러 개의 장르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리고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긴급하고 우리 모두의 삶에 연관이 있는 그 무엇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재미있고 웃기게 이야기한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봉 감독은 이날 수상 소감을 통해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놀라운 모험이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영화 <기생충>은 5월 30일 개봉돼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세계미래신문>이 <아시아경제> 등 국내외 보도를 토대로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작품세계를 특별 분석해 본다.   봉준호 감독은 2003년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는 스타 감독이 되었다. <사진=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의 특별한 힘: 꿈과 목표, 그리고 열정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출력과 예측 불허의 상황 설정, 위트 있는 대사,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등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이로 인해 황금종려상 수상은 칸 영화제 기간 내내 유력하게 점쳐졌다. <기생충>은 프랑스 시간으로 지난 5월 21일 오후 10시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이후 외신과 평단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극찬하며 수상의 기대감을 높였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소감의 자리에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손으로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봉 감독의 영화인생은 12세 때부터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 소심한 성격으로 친구가 많지 않았던 그는 영화비디오를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봉 감독의 꿈과 목표는 한국영화사 100년이 되는 2019년 5월 성취되었다. 그가 세계인을 사로잡고 세계적 영화감독이 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봉준호 감독은 꿈과 목표를 세우고 끈질기게 도전하였다. 봉 감독은 12세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스스로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어린 시절 꿈의 성취를 위해 중고 비디오점들을 돌아다니며 희귀한 외국영화들을 찾아보았다. 또한 미술을 전공한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몰래 들어가 디자인 관련 외국 서적들을 보면서 매일 그림을 그렸다. 이는 훗날 그가 영화를 만드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둘째, 봉준호 감독은 현실과 상상, 창의를 통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했다. 그는 유년 시절 친구가 많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고독의 시간을 상상력으로 채웠고, 그의 이런 상상력은 결국 영화 창작의 에너지로 발전했다. 봉 감독은 특히 혼자 보내던 시간, 영화 콘티를 제작해 보기도 했다. 이것이 무기가 되어 직접 영화 콘티 작업을 한다. 콘티는 영화제작의 정교한 설계도로 탄탄한 구성이 됐다.   셋째, 봉준호 감독은 영상을 통해 한국적 특수상황을 세계 보편적 정서와 가치, 철학, 삶의 문제로 부각시켰다. 그는 한국적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친구들과 ‘노란문’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동아리를 통해 1993년 6mm카메라로 찍은 <백색인>을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의 한 장면. 봉 감독은 이 작품의 흥행으로 천만관객 감독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영화 괴물>   ◆ 봉준호 감독의 작품철학: 한국사회 문제 상상과 창조   봉준호 감독의 힘과 영화의 세계는 <백색인>에 압축적으로 상징화되었다. <백색인>은 ‘화이트 칼라’ 주인공이 달동네를 헤매게 되고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줍게 되면서 시작되는 영화다. 한국사회의 계급 문제를 직접적으로 영상에 담았다. 이 영화는 거의 대사가 없다. 이미지와 배우의 액션으로 진행되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단편영화의 스타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봉 감독은 대학 졸업 후 충무로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연출부를 거쳐 1997년 <모텔 선인장> 조연출로 현장을 경험했다. 1999년엔 <유령>의 각본을 썼다. 이어 감독으로 본격 데뷔하여 한국 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자기 시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0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홍콩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차지했다.   봉 감독은 2003년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명실상부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는 스타 감독이 되었다. 전국 526만 관객동원으로 2004년도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 역대 한국영화흥행순위 13위(2018)에 올랐다. 봉 감독은 나아가 2006년 세번째 장편영화 <괴물>로 ‘천만영화’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다. 2017년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영화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미합작영화 <옥자>를 내놓았다.   봉준호 감독은 마침내 2019년 5월 <기생충>으로 세계 최정상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12세에 세웠던 꿈과 목표를 39년만에 이룬 것이다. 이것은 봉 감독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영화 100년사에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꿈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한국적 현실 위에서 상상과 창의, 열정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봉 감독의 성공에는 특히 송강호 같은 든든한 배우들이 오래 동안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봉 감독은 수상 영광을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 송강호”에게 돌리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다. <사진=영화 설국열차>   ◆ 봉준호 감독과 미래영화: 미래이슈 다룬 <괴물2> 기대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의 문제다. 그는 지금까지 계급적 모순으로 인한 빈부격차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 그의 영화들은 그래서 냉혹한 현실에 앵글을 맞추고 있다. 첫 작품 <백색인>은 물론 대표작 <설국열차>, <기생충> 등 모두가 계급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선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봉 감독의 작품에는 ‘미래’가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나 과거 또는 현재의 계급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은 모두 미래의 결과들이다. 그러므로 봉 감독이 계급문제의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미래의 계급문제를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미래전략원의 한 관계자는 “불평등, 계급, 빈부격차 등은 미래의 매우 중요한 이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봉 감독은 지금까지 경험 또는 상상의 한 조각을 일단 머릿속에 필름의 한 장면처럼 기록했다. 즉, 주로 일상생활에서 보거나 겪은 장면을 기억했다가 영화에 녹였다. 영화 <괴물>의 경우 봉 감독이 고등학생 시절 집에서 창밖으로 잠실대교를 내다보다가 교각에 뭔가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것을 본 기억으로부터 발화한 영화다. 그의 많은 영화에서 이 같은 명장면이 연출됐다.   봉준호 감독은 이제 세계 최고상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 그러나 그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미래 이슈를 꼭 다루어야 할 것이다. 영화거장이 된 봉 감독이 인류의 대재앙이 될 미래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빈부격차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더구나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기 때문에 더욱더 미래문제를 현재의 문제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괴물2>나 <설국열차2>의 새로운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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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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