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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창조]여성, 인권, 민주 등 쟁취…시대와 싸운 의인의 마지막 기도는?
    고 이희호 여사의 안장식이 2019년 6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거행된 후 관계자들이 봉분 작업을 하고 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기존 묘의 오른쪽 부분을 개장해 그 안에 안치되어 합장되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끊임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여성, 인권, 사회적 약자,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 등 우리 시대의 가치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낮은 곳을 향하며 고난의 시대를 이끌어 왔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의 행복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고 이희호 여사의 이야기다.   ‘여성지도자 영부인 고 이희호 여사 사회장 추모식’이 2019년 6월 14일 오전 9시 30분 국립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민주주의와 함께 영원히’라는 이름으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됐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나 향년 97세의 일기로 2019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묘역에 합장됐다.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역자였던 김 전 대통령 곁에 나란히 묻혀 ‘영원한 사랑’에 들어갔다.   추모식에는 공동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5당 대표와 의원, 각계 지도자와 시민 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현충관 밖에도 2000석의 자리가 마련돼 일반 시민들도 참석하여 영상을 보고 함께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며 고인과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일까? <세계미래신문>이 이날 추모식과 안장식을 찾아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해 보았다.    고 이희호 여사의 사회장 추모식이 6월 14일 오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되었다.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추모사: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 땅에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 이희호 여사를 추모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6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희호)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며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라고 추모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추도식 조사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며 애도하고 “우리는 여사님께서 꿈꾸셨던 국민의 행복과 평화, 통일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대중 대통령님과 함께 엄혹한 시절을 보내며, 상상할 수 없이 가혹한 시련과 고난, 역경과 격동의 생을 잘 참고 견디셨다”며 “우리 모두 다 같이 여사님께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었다는 말씀을 바친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해찬 대표는 “저는 동교동에서 아침마다 당직자들에게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챙겨주신 모습이 다시금 새롭게 기억에 남는다”며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여사님의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길이 열렸다”며 “일평생 오롯이 민주주의, 인권 수호의 길을 걸으셨던 이 여사님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여 애도의 말씀 올린다”고 했다.   김덕룡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보낸 조전을 낭독했다. 김 위원장은 조전에서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나 향년 97세의 일기로 2019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역자였던 김 전 대통령 곁에 나란히 묻혀 ‘영원한 사랑’에 들어갔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안장식: 김대중 대통령 묘에 합장 ‘영원한 사랑’   추모식 이후 이어진 안장식은 현충원 내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기존 묘의 오른쪽 부분을 개장해 합장하는 방식으로 거행되었다. 안장식은 운구차에서 의장대 8명이 이 여사의 관을 들고 한 발씩 조심스럽게 이동한 뒤 봉분 앞에 내려놓으면서 시작됐다. 안장식에는 유가족들을 비롯해 이 총리, 문 의장, 5당 대표,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현미 국토교통부·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 등 150여명이 함께했다.   안장식 예배를 집전한 이해동 목사는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를 봉독했다. 참석자 모두 고개를 숙인 가운데 이 목사는 “이제 우리는 이희호 여사와 몸으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며 “그러나 올곧은 삶이 우리 삶 속에 이어져 마침내 좋은 열매로 맺혀지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고별기도했다.   이날 오전 11시 11분 예배가 끝난 뒤 하관이 진행됐다. 의장대는 봉분 안으로 들어가 이 여사의 관을 미리 파 놓은 땅속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뒤이어 허토가 진행됐다.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을 시작으로 3남인 김홍걸 민화협 상임대표의장 등 유가족들이 차례로 삽으로 흙을 관 위에 뿌렸다. 노건호씨를 끝으로 허토를 마친 뒤 의장대가 3차례에 걸쳐 조총 19발을 발사했다. 이어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지막 묵념이 이뤄졌다.   안장식이 끝나자 일반 시민들은 하얀색 국화를 들고 김 대통령과 이 여사가 함께 묻힌 묘역을 찾아 추모했다. 이 여사는 이렇게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가족들과 정치권 관계자, 시민들의 슬픔을 뒤로하고 남편이자 동지인 김대중 대통령 곁에 편안히 잠들었다. 이 땅에 온지 97년만에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이 땅의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졌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라! 남과 북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라.”   2008년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생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 삶과 죽음: “누가 이 시대의 정의를 이어갈 것인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사람은 죽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신처럼 죽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희호 여사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예배당과 현충원 추모식장을 꽉 채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것은 그가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희호 여사는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등 파란의 시대를 거쳤다.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는 고 이희호 여사 장례예배 추도사에서 “지성과 사랑, 역사의식, 비전을 지닌 이 시대의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라고 추도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시대를 앞서갔던 선구자였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던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국가발전과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헌신과 사랑일 것이다. 이희호 여사는 한 평생을 이 땅의 희망과 약자들을 위해 헌신과 사랑을 바쳤다. 그는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을 가장 강렬히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영광도 있었지만 고문과 투옥, 납치, 사형선고, 연금, 망명을 겪었다. 그러나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화해와 용서를 주문했다.   고인은 살아생전에 “나는 늦게 결혼했어도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은 값이 있고 뜻이 있는 일생이었다”라고 밝혔다.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역자와 동지,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역자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삶은 축복이다. 누군가가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기도를 위해 동역자들을 모아 역사의 또 다른 새벽을 열어 나갈 것이다. “이젠 천국에서 부활하소서!”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 국가안보
    • 공의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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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창조]여성, 인권, 민주 등 쟁취…시대와 싸운 의인의 마지막 기도는?
    고 이희호 여사의 안장식이 2019년 6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거행된 후 관계자들이 봉분 작업을 하고 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기존 묘의 오른쪽 부분을 개장해 그 안에 안치되어 합장되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끊임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여성, 인권, 사회적 약자,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 등 우리 시대의 가치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낮은 곳을 향하며 고난의 시대를 이끌어 왔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의 행복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고 이희호 여사의 이야기다.   ‘여성지도자 영부인 고 이희호 여사 사회장 추모식’이 2019년 6월 14일 오전 9시 30분 국립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민주주의와 함께 영원히’라는 이름으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됐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나 향년 97세의 일기로 2019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묘역에 합장됐다.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역자였던 김 전 대통령 곁에 나란히 묻혀 ‘영원한 사랑’에 들어갔다.   추모식에는 공동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5당 대표와 의원, 각계 지도자와 시민 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현충관 밖에도 2000석의 자리가 마련돼 일반 시민들도 참석하여 영상을 보고 함께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며 고인과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일까? <세계미래신문>이 이날 추모식과 안장식을 찾아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해 보았다.    고 이희호 여사의 사회장 추모식이 6월 14일 오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되었다.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추모사: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 땅에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 이희호 여사를 추모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6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희호)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며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라고 추모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추도식 조사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며 애도하고 “우리는 여사님께서 꿈꾸셨던 국민의 행복과 평화, 통일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대중 대통령님과 함께 엄혹한 시절을 보내며, 상상할 수 없이 가혹한 시련과 고난, 역경과 격동의 생을 잘 참고 견디셨다”며 “우리 모두 다 같이 여사님께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었다는 말씀을 바친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해찬 대표는 “저는 동교동에서 아침마다 당직자들에게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챙겨주신 모습이 다시금 새롭게 기억에 남는다”며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여사님의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길이 열렸다”며 “일평생 오롯이 민주주의, 인권 수호의 길을 걸으셨던 이 여사님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여 애도의 말씀 올린다”고 했다.   김덕룡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보낸 조전을 낭독했다. 김 위원장은 조전에서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나 향년 97세의 일기로 2019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역자였던 김 전 대통령 곁에 나란히 묻혀 ‘영원한 사랑’에 들어갔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안장식: 김대중 대통령 묘에 합장 ‘영원한 사랑’   추모식 이후 이어진 안장식은 현충원 내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기존 묘의 오른쪽 부분을 개장해 합장하는 방식으로 거행되었다. 안장식은 운구차에서 의장대 8명이 이 여사의 관을 들고 한 발씩 조심스럽게 이동한 뒤 봉분 앞에 내려놓으면서 시작됐다. 안장식에는 유가족들을 비롯해 이 총리, 문 의장, 5당 대표,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현미 국토교통부·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 등 150여명이 함께했다.   안장식 예배를 집전한 이해동 목사는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를 봉독했다. 참석자 모두 고개를 숙인 가운데 이 목사는 “이제 우리는 이희호 여사와 몸으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며 “그러나 올곧은 삶이 우리 삶 속에 이어져 마침내 좋은 열매로 맺혀지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고별기도했다.   이날 오전 11시 11분 예배가 끝난 뒤 하관이 진행됐다. 의장대는 봉분 안으로 들어가 이 여사의 관을 미리 파 놓은 땅속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뒤이어 허토가 진행됐다.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을 시작으로 3남인 김홍걸 민화협 상임대표의장 등 유가족들이 차례로 삽으로 흙을 관 위에 뿌렸다. 노건호씨를 끝으로 허토를 마친 뒤 의장대가 3차례에 걸쳐 조총 19발을 발사했다. 이어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지막 묵념이 이뤄졌다.   안장식이 끝나자 일반 시민들은 하얀색 국화를 들고 김 대통령과 이 여사가 함께 묻힌 묘역을 찾아 추모했다. 이 여사는 이렇게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가족들과 정치권 관계자, 시민들의 슬픔을 뒤로하고 남편이자 동지인 김대중 대통령 곁에 편안히 잠들었다. 이 땅에 온지 97년만에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이 땅의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졌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라! 남과 북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라.”   2008년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생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 삶과 죽음: “누가 이 시대의 정의를 이어갈 것인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사람은 죽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신처럼 죽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희호 여사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예배당과 현충원 추모식장을 꽉 채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것은 그가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희호 여사는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등 파란의 시대를 거쳤다.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는 고 이희호 여사 장례예배 추도사에서 “지성과 사랑, 역사의식, 비전을 지닌 이 시대의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라고 추도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시대를 앞서갔던 선구자였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던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국가발전과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헌신과 사랑일 것이다. 이희호 여사는 한 평생을 이 땅의 희망과 약자들을 위해 헌신과 사랑을 바쳤다. 그는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을 가장 강렬히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영광도 있었지만 고문과 투옥, 납치, 사형선고, 연금, 망명을 겪었다. 그러나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화해와 용서를 주문했다.   고인은 살아생전에 “나는 늦게 결혼했어도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은 값이 있고 뜻이 있는 일생이었다”라고 밝혔다.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역자와 동지,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역자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삶은 축복이다. 누군가가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기도를 위해 동역자들을 모아 역사의 또 다른 새벽을 열어 나갈 것이다. “이젠 천국에서 부활하소서!”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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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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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창조]여성, 인권, 민주 등 쟁취…시대와 싸운 의인의 마지막 기도는?
    고 이희호 여사의 안장식이 2019년 6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거행된 후 관계자들이 봉분 작업을 하고 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기존 묘의 오른쪽 부분을 개장해 그 안에 안치되어 합장되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끊임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여성, 인권, 사회적 약자,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 등 우리 시대의 가치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낮은 곳을 향하며 고난의 시대를 이끌어 왔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의 행복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고 이희호 여사의 이야기다.   ‘여성지도자 영부인 고 이희호 여사 사회장 추모식’이 2019년 6월 14일 오전 9시 30분 국립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민주주의와 함께 영원히’라는 이름으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됐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나 향년 97세의 일기로 2019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묘역에 합장됐다.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역자였던 김 전 대통령 곁에 나란히 묻혀 ‘영원한 사랑’에 들어갔다.   추모식에는 공동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5당 대표와 의원, 각계 지도자와 시민 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현충관 밖에도 2000석의 자리가 마련돼 일반 시민들도 참석하여 영상을 보고 함께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며 고인과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일까? <세계미래신문>이 이날 추모식과 안장식을 찾아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해 보았다.    고 이희호 여사의 사회장 추모식이 6월 14일 오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되었다. 장례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추모사: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 땅에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 이희호 여사를 추모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6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희호)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며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라고 추모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추도식 조사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며 애도하고 “우리는 여사님께서 꿈꾸셨던 국민의 행복과 평화, 통일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대중 대통령님과 함께 엄혹한 시절을 보내며, 상상할 수 없이 가혹한 시련과 고난, 역경과 격동의 생을 잘 참고 견디셨다”며 “우리 모두 다 같이 여사님께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었다는 말씀을 바친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해찬 대표는 “저는 동교동에서 아침마다 당직자들에게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챙겨주신 모습이 다시금 새롭게 기억에 남는다”며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여사님의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길이 열렸다”며 “일평생 오롯이 민주주의, 인권 수호의 길을 걸으셨던 이 여사님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여 애도의 말씀 올린다”고 했다.   김덕룡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보낸 조전을 낭독했다. 김 위원장은 조전에서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나 향년 97세의 일기로 2019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배우자이자 정치적 동역자였던 김 전 대통령 곁에 나란히 묻혀 ‘영원한 사랑’에 들어갔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안장식: 김대중 대통령 묘에 합장 ‘영원한 사랑’   추모식 이후 이어진 안장식은 현충원 내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기존 묘의 오른쪽 부분을 개장해 합장하는 방식으로 거행되었다. 안장식은 운구차에서 의장대 8명이 이 여사의 관을 들고 한 발씩 조심스럽게 이동한 뒤 봉분 앞에 내려놓으면서 시작됐다. 안장식에는 유가족들을 비롯해 이 총리, 문 의장, 5당 대표,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현미 국토교통부·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 등 150여명이 함께했다.   안장식 예배를 집전한 이해동 목사는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를 봉독했다. 참석자 모두 고개를 숙인 가운데 이 목사는 “이제 우리는 이희호 여사와 몸으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며 “그러나 올곧은 삶이 우리 삶 속에 이어져 마침내 좋은 열매로 맺혀지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고별기도했다.   이날 오전 11시 11분 예배가 끝난 뒤 하관이 진행됐다. 의장대는 봉분 안으로 들어가 이 여사의 관을 미리 파 놓은 땅속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뒤이어 허토가 진행됐다.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을 시작으로 3남인 김홍걸 민화협 상임대표의장 등 유가족들이 차례로 삽으로 흙을 관 위에 뿌렸다. 노건호씨를 끝으로 허토를 마친 뒤 의장대가 3차례에 걸쳐 조총 19발을 발사했다. 이어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지막 묵념이 이뤄졌다.   안장식이 끝나자 일반 시민들은 하얀색 국화를 들고 김 대통령과 이 여사가 함께 묻힌 묘역을 찾아 추모했다. 이 여사는 이렇게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가족들과 정치권 관계자, 시민들의 슬픔을 뒤로하고 남편이자 동지인 김대중 대통령 곁에 편안히 잠들었다. 이 땅에 온지 97년만에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이 땅의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졌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라! 남과 북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라.”   2008년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생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김대중 평화센터>   ◆ 삶과 죽음: “누가 이 시대의 정의를 이어갈 것인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사람은 죽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신처럼 죽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희호 여사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예배당과 현충원 추모식장을 꽉 채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것은 그가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희호 여사는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등 파란의 시대를 거쳤다.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는 고 이희호 여사 장례예배 추도사에서 “지성과 사랑, 역사의식, 비전을 지닌 이 시대의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라고 추도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시대를 앞서갔던 선구자였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던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국가발전과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헌신과 사랑일 것이다. 이희호 여사는 한 평생을 이 땅의 희망과 약자들을 위해 헌신과 사랑을 바쳤다. 그는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을 가장 강렬히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영광도 있었지만 고문과 투옥, 납치, 사형선고, 연금, 망명을 겪었다. 그러나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화해와 용서를 주문했다.   고인은 살아생전에 “나는 늦게 결혼했어도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은 값이 있고 뜻이 있는 일생이었다”라고 밝혔다.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역자와 동지,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역자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삶은 축복이다. 누군가가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기도를 위해 동역자들을 모아 역사의 또 다른 새벽을 열어 나갈 것이다. “이젠 천국에서 부활하소서!”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 국가안보
    • 공의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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