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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정치]민주평화당 원외 지역위원장들 ‘당사수 정치개혁’ 나섰다
    민주평화당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8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혁정당으로 구태정치를 청산해 나갈 것을 결의하고 있다.   [세계미래신문] 민주평화당 원외 지역위원장들 일부는 당의 분당 위기와 관련 환골탈태하여 개혁정당으로 거듭나는 ‘당사수 정치개혁운동’에 발 벗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민주평화당 마포갑 홍성문 위원장, 관악을 한인수 위원장 등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8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부 현역의원 중심의 ‘대안정치연대’의 탈당 결의에 대하여 “국가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민생을 외면하고, 대의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비판하고 당사수 개혁운동을 정치개혁 차원에서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민주평화당 원외 지역위원장 중 당에 잔류하여 개혁정당으로 정치개혁운동을 통해 당을 사수하겠다는 당사수파 지역위원장들은 60여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잔류는 원하나 단합을 강조하여 의사표시를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대안정치연대에 합류할 예정이다.   민주평화당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이날 특히 “대안정치연대의 탈당 결의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고, 당원 및 지지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며, 희망도 감동도 없다”고 지적하고 “지금이라도 탈당행보를 중단하고 함께 당을 개혁하여 구태정치를 청산해 나가자”고 강력히 촉구했다.   민주평화당 내홍으로 탈당이 예정되어 있는 대안정치연대 의원들과는 달리 민주평화당을 중심의 개혁정당으로 재탄생을 원하는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위원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평화당이 창당 이후 최대 위기 속에서 당이 거듭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민주평화당 탈당을 결의한 ‘대안정치연대’ 의원들은 오는 8월 12일 탈당을 결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고보조금 지급 이틀을 앞두고 탈당할 것으로 보여 민주평화당을 와해시킨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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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1
  • [미래정치]은행 지점장 퇴임 후 ‘정치개혁’ 깃발 든 까닭은?
    한인수 교수가 2019년 관악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이곳에 산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네요. 그런데 삶의 질이 전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시급합니다.” 전 KB국민은행 지점장 출신 한인수(59) 대림대학교 겸임교수는 2019년 2월 8일(토) 오후 서울 관악구 관악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은행인 국민은행 지점장을 퇴임하고 현직 교수로서 60세 가까운 나이에 정치에 도전한 이유를 강하고 당당하게 밝혔다. 한 교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시골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년공, 막노동 등을 거쳐 주경야독하며 전북대에 입학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국민은행에 들어가 30년 가까이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의 벗’으로 시대적 소임에 최선을 다하였다. 은행 재직 중 고려대에서 경제학석사, 세종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은행 퇴임 후 대림대학교 산업경영학과 겸임교수가 된 그는 청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강의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청년들로부터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걱정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듣게 되었다. 그는 고민 끝에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관악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자 지난해 4월 신생정당인 민주평화당 관악을 지역위원장을 신청, 선임되었다. 그가 왜 그 어렵다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와 그의 새로운 미래도전을 들어본다. 한인수 교수는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야 했다. 1975년 금성사 부산동래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던 시절 동료들과 한 컷을 찍었다. <사진=한인수 제공>     ◆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관악발전의 역사 창조”   ▷ 다소 늦은 나이에 정치 도전에 나섰습니다. 정치적 비전과 꿈이 무엇인가요?   “국민은행 30년간 서울과 경기지역 곳곳에서 근무하며 많은 변화와 발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관악은 여전히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남아 있습니다. 관악발전이 이제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했듯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이겨내 관악 발전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겠습니다.”   한 교수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 곳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2004년 5월 서민정취가 물씬 풍기는 관악구 난곡 달동네 재개발지역의 미분양된 저층 아파트인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여 살고 있다. 난곡에서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며 난곡의 삶이 매우 불편하고 고통에 가깝다는 것을 수없이 체험했다. 특히 교통난으로 길에서 몇 시간씩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 이럴진대 이 지역 서민들의 애환은 어떠할 것인가?”라는 생각에 그는 “참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도전과 응전 통해 시련 극복하고 새 역사 창조”   ▷ ‘인간 한인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여러 정치인 중 특히 한인수를 왜 기억해야 할까요?   “한인수는 감히 도전과 응전을 통해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 및 서민들을 도와 따뜻한 금융경제를 실천한 사람으로 헌신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미래혁신 정치·경제인으로서 관악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 교수는 전북 임실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해야 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생면부지의 땅, 부산에서 금성사 등 ‘소년공’으로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소년공 한인수는 낮에는 공장에서 하루 15시간 또는 철야까지도 작업했고, 밤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등록하고 공부했다.    막노동, 신문배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북대 경제학과에 늦깎이 입학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암울한 80년대 초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의 대열에 나서기도 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국민은행에 합격하여 만 29년을 근무하고 서울 강북구 미아역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한인수 교수는 국민은행에서 30년을 근무하며 중소기업과 영세상인, 서민금융에 앞장섰다. 지점장 시절 근무하던 모습니다.<사진=한인수 제공>            ◆ “중소기업, 소상공인, 서민 위한 30년 큰 기쁨”   ▷ 국민은행 30년을 총결산한다면 어떻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30년간 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서민들이 많은 지역에서 근무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들이 고객이다 보니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위한 금융에 치중했습니다. 수천개가 넘는 중소기업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하여 기업회생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민들의 주택마련이나 생활자금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여 따뜻한 금융을 실천했다고 평가합니다.”   한 교수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의 어려움과 청소년들의 고민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은행이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공익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때문에 소속 은행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중소기업 및 지역소상공인 금융지원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과 서민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전국소기업소상공인대회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그 어떤 상보다 이 표창장이 더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 “관악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 관악발전의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관악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관악구는 50만명의 뛰어난 인적자원이 있습니다. 관악산과 도림천, 강감찬 장군 유적, 삼성산 천주교성지 등 생태관광자원도 풍부합니다. 그런데 관악발전을 위한 공적 기반인 인프라 시설이 매우 부족합니다. 특히 교통난 개선을 위해 획기적으로 전철망과 도로망을 확충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중소기업 등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현재 건설 중인 경전철 신림선은 ‘고시촌역’ 역사 증설 등을 보완해야 하며, 15년째 제자리걸음인 경전철 난곡선은 2호선 또는 기타 지선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곡선보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은 예산이 들 수도 있는 지하철 지선이 교통복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훨씬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관악구에 살면서 그동안 수없이 관악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안해 왔지만 정치권이 매번 묵살해 왔다는 것. 이 때문에 관악발전을 위해 늦깎이로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인수 교수의 마지막 꿈은 정치개혁을 통해 낙후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는 손에 쥔 나무처럼 늘 푸른 관악을 만들겠다며 주먹을 불끈쥐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사진=장영권 대표기자>            ◆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 개혁해야 국가발전”   ▷ 민주평화당과 같은 소수당은 존립이 불투명합니다. 민주평화당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요? “현행 정치제도는 여야 양당의 승자 독식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민의가 왜곡되고 흑백논리와 좌우 이념대결로 국민통합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다양한 계층의 민의가 충분히 수렴되는 다당제와 연정제로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한국경제가 더 성장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 촛불혁명에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기득권 부패세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다시 실망을 느끼고 제3지대 정치가 없는 한 새로운 미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4월 민생, 평화, 민주, 개혁, 서민의 기치로 창당한 민주평화당에 입당한 금융경제인 교수 출신 정치 신인이다.     한인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빈부차별과 양극화’를 꼽는다. 그는 이것이 청소년, 중소기업, 영세상인, 서민들을 모두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새로운 정치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한 교수는 인생의 제1막 소년공과 학창시절, 제2막 국민은행과 서민금융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이제 정치 신인으로서 모든 것을 걸고 인생 3막의 도전에 나섰다.   그는 요즘 기득권층이 쌓아놓은 거대한 성벽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격파해야 하는가를 밤샘 고민한다. 한 교수의 마지막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고 관악지역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국가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헌신과 봉사로서 보답하겠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꿈이자 도전이다. 과연 그가 여러 고비를 넘고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큰 기대를 해본다.
    • 국가안보
    2019-02-10

미래전략 검색결과

  • [미래정치]민주평화당 원외 지역위원장들 ‘당사수 정치개혁’ 나섰다
    민주평화당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8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혁정당으로 구태정치를 청산해 나갈 것을 결의하고 있다.   [세계미래신문] 민주평화당 원외 지역위원장들 일부는 당의 분당 위기와 관련 환골탈태하여 개혁정당으로 거듭나는 ‘당사수 정치개혁운동’에 발 벗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민주평화당 마포갑 홍성문 위원장, 관악을 한인수 위원장 등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8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부 현역의원 중심의 ‘대안정치연대’의 탈당 결의에 대하여 “국가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민생을 외면하고, 대의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비판하고 당사수 개혁운동을 정치개혁 차원에서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민주평화당 원외 지역위원장 중 당에 잔류하여 개혁정당으로 정치개혁운동을 통해 당을 사수하겠다는 당사수파 지역위원장들은 60여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잔류는 원하나 단합을 강조하여 의사표시를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대안정치연대에 합류할 예정이다.   민주평화당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이날 특히 “대안정치연대의 탈당 결의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고, 당원 및 지지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며, 희망도 감동도 없다”고 지적하고 “지금이라도 탈당행보를 중단하고 함께 당을 개혁하여 구태정치를 청산해 나가자”고 강력히 촉구했다.   민주평화당 내홍으로 탈당이 예정되어 있는 대안정치연대 의원들과는 달리 민주평화당을 중심의 개혁정당으로 재탄생을 원하는 당사수파 원외 지역위원장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위원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평화당이 창당 이후 최대 위기 속에서 당이 거듭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민주평화당 탈당을 결의한 ‘대안정치연대’ 의원들은 오는 8월 12일 탈당을 결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고보조금 지급 이틀을 앞두고 탈당할 것으로 보여 민주평화당을 와해시킨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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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
    2019-08-11
  • [미래정치]은행 지점장 퇴임 후 ‘정치개혁’ 깃발 든 까닭은?
    한인수 교수가 2019년 관악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이곳에 산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네요. 그런데 삶의 질이 전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시급합니다.” 전 KB국민은행 지점장 출신 한인수(59) 대림대학교 겸임교수는 2019년 2월 8일(토) 오후 서울 관악구 관악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은행인 국민은행 지점장을 퇴임하고 현직 교수로서 60세 가까운 나이에 정치에 도전한 이유를 강하고 당당하게 밝혔다. 한 교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시골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년공, 막노동 등을 거쳐 주경야독하며 전북대에 입학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국민은행에 들어가 30년 가까이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의 벗’으로 시대적 소임에 최선을 다하였다. 은행 재직 중 고려대에서 경제학석사, 세종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은행 퇴임 후 대림대학교 산업경영학과 겸임교수가 된 그는 청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강의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청년들로부터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걱정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듣게 되었다. 그는 고민 끝에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관악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자 지난해 4월 신생정당인 민주평화당 관악을 지역위원장을 신청, 선임되었다. 그가 왜 그 어렵다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와 그의 새로운 미래도전을 들어본다. 한인수 교수는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야 했다. 1975년 금성사 부산동래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던 시절 동료들과 한 컷을 찍었다. <사진=한인수 제공>     ◆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관악발전의 역사 창조”   ▷ 다소 늦은 나이에 정치 도전에 나섰습니다. 정치적 비전과 꿈이 무엇인가요?   “국민은행 30년간 서울과 경기지역 곳곳에서 근무하며 많은 변화와 발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관악은 여전히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남아 있습니다. 관악발전이 이제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했듯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이겨내 관악 발전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겠습니다.”   한 교수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 곳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2004년 5월 서민정취가 물씬 풍기는 관악구 난곡 달동네 재개발지역의 미분양된 저층 아파트인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여 살고 있다. 난곡에서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며 난곡의 삶이 매우 불편하고 고통에 가깝다는 것을 수없이 체험했다. 특히 교통난으로 길에서 몇 시간씩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 이럴진대 이 지역 서민들의 애환은 어떠할 것인가?”라는 생각에 그는 “참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도전과 응전 통해 시련 극복하고 새 역사 창조”   ▷ ‘인간 한인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여러 정치인 중 특히 한인수를 왜 기억해야 할까요?   “한인수는 감히 도전과 응전을 통해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 및 서민들을 도와 따뜻한 금융경제를 실천한 사람으로 헌신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미래혁신 정치·경제인으로서 관악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 교수는 전북 임실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해야 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생면부지의 땅, 부산에서 금성사 등 ‘소년공’으로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소년공 한인수는 낮에는 공장에서 하루 15시간 또는 철야까지도 작업했고, 밤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등록하고 공부했다.    막노동, 신문배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북대 경제학과에 늦깎이 입학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암울한 80년대 초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의 대열에 나서기도 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국민은행에 합격하여 만 29년을 근무하고 서울 강북구 미아역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한인수 교수는 국민은행에서 30년을 근무하며 중소기업과 영세상인, 서민금융에 앞장섰다. 지점장 시절 근무하던 모습니다.<사진=한인수 제공>            ◆ “중소기업, 소상공인, 서민 위한 30년 큰 기쁨”   ▷ 국민은행 30년을 총결산한다면 어떻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30년간 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서민들이 많은 지역에서 근무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들이 고객이다 보니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위한 금융에 치중했습니다. 수천개가 넘는 중소기업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하여 기업회생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민들의 주택마련이나 생활자금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여 따뜻한 금융을 실천했다고 평가합니다.”   한 교수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의 어려움과 청소년들의 고민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은행이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공익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때문에 소속 은행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중소기업 및 지역소상공인 금융지원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과 서민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전국소기업소상공인대회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그 어떤 상보다 이 표창장이 더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 “관악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 관악발전의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관악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관악구는 50만명의 뛰어난 인적자원이 있습니다. 관악산과 도림천, 강감찬 장군 유적, 삼성산 천주교성지 등 생태관광자원도 풍부합니다. 그런데 관악발전을 위한 공적 기반인 인프라 시설이 매우 부족합니다. 특히 교통난 개선을 위해 획기적으로 전철망과 도로망을 확충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중소기업 등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현재 건설 중인 경전철 신림선은 ‘고시촌역’ 역사 증설 등을 보완해야 하며, 15년째 제자리걸음인 경전철 난곡선은 2호선 또는 기타 지선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곡선보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은 예산이 들 수도 있는 지하철 지선이 교통복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훨씬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관악구에 살면서 그동안 수없이 관악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안해 왔지만 정치권이 매번 묵살해 왔다는 것. 이 때문에 관악발전을 위해 늦깎이로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인수 교수의 마지막 꿈은 정치개혁을 통해 낙후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는 손에 쥔 나무처럼 늘 푸른 관악을 만들겠다며 주먹을 불끈쥐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사진=장영권 대표기자>            ◆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 개혁해야 국가발전”   ▷ 민주평화당과 같은 소수당은 존립이 불투명합니다. 민주평화당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요? “현행 정치제도는 여야 양당의 승자 독식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민의가 왜곡되고 흑백논리와 좌우 이념대결로 국민통합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다양한 계층의 민의가 충분히 수렴되는 다당제와 연정제로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한국경제가 더 성장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 촛불혁명에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기득권 부패세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다시 실망을 느끼고 제3지대 정치가 없는 한 새로운 미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4월 민생, 평화, 민주, 개혁, 서민의 기치로 창당한 민주평화당에 입당한 금융경제인 교수 출신 정치 신인이다.     한인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빈부차별과 양극화’를 꼽는다. 그는 이것이 청소년, 중소기업, 영세상인, 서민들을 모두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새로운 정치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한 교수는 인생의 제1막 소년공과 학창시절, 제2막 국민은행과 서민금융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이제 정치 신인으로서 모든 것을 걸고 인생 3막의 도전에 나섰다.   그는 요즘 기득권층이 쌓아놓은 거대한 성벽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격파해야 하는가를 밤샘 고민한다. 한 교수의 마지막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고 관악지역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국가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헌신과 봉사로서 보답하겠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꿈이자 도전이다. 과연 그가 여러 고비를 넘고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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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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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정치]은행 지점장 퇴임 후 ‘정치개혁’ 깃발 든 까닭은?
    한인수 교수가 2019년 관악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이곳에 산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네요. 그런데 삶의 질이 전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시급합니다.” 전 KB국민은행 지점장 출신 한인수(59) 대림대학교 겸임교수는 2019년 2월 8일(토) 오후 서울 관악구 관악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은행인 국민은행 지점장을 퇴임하고 현직 교수로서 60세 가까운 나이에 정치에 도전한 이유를 강하고 당당하게 밝혔다. 한 교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시골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년공, 막노동 등을 거쳐 주경야독하며 전북대에 입학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국민은행에 들어가 30년 가까이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의 벗’으로 시대적 소임에 최선을 다하였다. 은행 재직 중 고려대에서 경제학석사, 세종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은행 퇴임 후 대림대학교 산업경영학과 겸임교수가 된 그는 청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강의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청년들로부터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걱정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듣게 되었다. 그는 고민 끝에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관악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자 지난해 4월 신생정당인 민주평화당 관악을 지역위원장을 신청, 선임되었다. 그가 왜 그 어렵다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와 그의 새로운 미래도전을 들어본다. 한인수 교수는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야 했다. 1975년 금성사 부산동래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던 시절 동료들과 한 컷을 찍었다. <사진=한인수 제공>     ◆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관악발전의 역사 창조”   ▷ 다소 늦은 나이에 정치 도전에 나섰습니다. 정치적 비전과 꿈이 무엇인가요?   “국민은행 30년간 서울과 경기지역 곳곳에서 근무하며 많은 변화와 발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관악은 여전히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남아 있습니다. 관악발전이 이제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했듯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이겨내 관악 발전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겠습니다.”   한 교수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 곳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2004년 5월 서민정취가 물씬 풍기는 관악구 난곡 달동네 재개발지역의 미분양된 저층 아파트인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여 살고 있다. 난곡에서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며 난곡의 삶이 매우 불편하고 고통에 가깝다는 것을 수없이 체험했다. 특히 교통난으로 길에서 몇 시간씩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 이럴진대 이 지역 서민들의 애환은 어떠할 것인가?”라는 생각에 그는 “참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도전과 응전 통해 시련 극복하고 새 역사 창조”   ▷ ‘인간 한인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여러 정치인 중 특히 한인수를 왜 기억해야 할까요?   “한인수는 감히 도전과 응전을 통해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 및 서민들을 도와 따뜻한 금융경제를 실천한 사람으로 헌신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미래혁신 정치·경제인으로서 관악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 교수는 전북 임실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해야 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생면부지의 땅, 부산에서 금성사 등 ‘소년공’으로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소년공 한인수는 낮에는 공장에서 하루 15시간 또는 철야까지도 작업했고, 밤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등록하고 공부했다.    막노동, 신문배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북대 경제학과에 늦깎이 입학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암울한 80년대 초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의 대열에 나서기도 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국민은행에 합격하여 만 29년을 근무하고 서울 강북구 미아역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한인수 교수는 국민은행에서 30년을 근무하며 중소기업과 영세상인, 서민금융에 앞장섰다. 지점장 시절 근무하던 모습니다.<사진=한인수 제공>            ◆ “중소기업, 소상공인, 서민 위한 30년 큰 기쁨”   ▷ 국민은행 30년을 총결산한다면 어떻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30년간 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서민들이 많은 지역에서 근무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들이 고객이다 보니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위한 금융에 치중했습니다. 수천개가 넘는 중소기업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하여 기업회생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민들의 주택마련이나 생활자금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여 따뜻한 금융을 실천했다고 평가합니다.”   한 교수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의 어려움과 청소년들의 고민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은행이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공익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때문에 소속 은행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중소기업 및 지역소상공인 금융지원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과 서민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전국소기업소상공인대회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그 어떤 상보다 이 표창장이 더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 “관악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 관악발전의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관악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관악구는 50만명의 뛰어난 인적자원이 있습니다. 관악산과 도림천, 강감찬 장군 유적, 삼성산 천주교성지 등 생태관광자원도 풍부합니다. 그런데 관악발전을 위한 공적 기반인 인프라 시설이 매우 부족합니다. 특히 교통난 개선을 위해 획기적으로 전철망과 도로망을 확충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중소기업 등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현재 건설 중인 경전철 신림선은 ‘고시촌역’ 역사 증설 등을 보완해야 하며, 15년째 제자리걸음인 경전철 난곡선은 2호선 또는 기타 지선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곡선보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은 예산이 들 수도 있는 지하철 지선이 교통복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훨씬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관악구에 살면서 그동안 수없이 관악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안해 왔지만 정치권이 매번 묵살해 왔다는 것. 이 때문에 관악발전을 위해 늦깎이로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인수 교수의 마지막 꿈은 정치개혁을 통해 낙후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는 손에 쥔 나무처럼 늘 푸른 관악을 만들겠다며 주먹을 불끈쥐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사진=장영권 대표기자>            ◆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 개혁해야 국가발전”   ▷ 민주평화당과 같은 소수당은 존립이 불투명합니다. 민주평화당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요? “현행 정치제도는 여야 양당의 승자 독식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민의가 왜곡되고 흑백논리와 좌우 이념대결로 국민통합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다양한 계층의 민의가 충분히 수렴되는 다당제와 연정제로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한국경제가 더 성장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 촛불혁명에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기득권 부패세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다시 실망을 느끼고 제3지대 정치가 없는 한 새로운 미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4월 민생, 평화, 민주, 개혁, 서민의 기치로 창당한 민주평화당에 입당한 금융경제인 교수 출신 정치 신인이다.     한인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빈부차별과 양극화’를 꼽는다. 그는 이것이 청소년, 중소기업, 영세상인, 서민들을 모두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새로운 정치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한 교수는 인생의 제1막 소년공과 학창시절, 제2막 국민은행과 서민금융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이제 정치 신인으로서 모든 것을 걸고 인생 3막의 도전에 나섰다.   그는 요즘 기득권층이 쌓아놓은 거대한 성벽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격파해야 하는가를 밤샘 고민한다. 한 교수의 마지막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고 관악지역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국가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헌신과 봉사로서 보답하겠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꿈이자 도전이다. 과연 그가 여러 고비를 넘고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큰 기대를 해본다.
    • 국가안보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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