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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창조]1인 가구·저출산 증가 “지금 대한민국은 자살 중“…그 미래는?
    “제대로 된 나라를 세워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수만명이 뭉쳤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싸웠으나 일본군의 신무기 앞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신은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SBS드라마 ‘녹두꽃’>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요즘 방영중인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며 민초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외적의 무리를 몰아낼 것이다”며 양반과 부호 방백(관찰사), 수령에게 고통 받는 민초들에게 동학혁명의 대의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동학혁명은 125년전인 1894년 억압과 차별, 멸시를 받아온 이 땅의 민중들이 조선 강토를 피로 물들이며 봉건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근대국가의 신 새벽을 열어젖힌 대사건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자유와 평등, 민족 자주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동학혁명은 핵심 인물 전봉준만의 영웅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20여만명의 혁명군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외친 분노와 항거, 희망을 담은 우리 선대들의 이야기다.   동학혁명은 일종의 건국혁명이었다. 전봉준의 지휘 아래 서울로 진격하던 혁명군은 공주 우금티에서 조·일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혁명군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어도 항전했으나, 일본군의 첨단 신무기를 이겨낼 수 없었다. 동학혁명군의 꿈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정신은 살아남아 3·1건국운동, 항일건국투쟁, 4·19건국의거, 6월항쟁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모두가 “나라다운 나라를 건국하여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피로 쓴 근현대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였다.   과연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여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어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가진자와 없는자, 사대와 자주 등의 대립과 갈등으로 허우적대고 있다. 더 나은 미래의 꿈과 대한민국 건국의 완성을 향한 동학혁명군 같은 도전은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 서울역, 시청앞, 국회 등은 국가의 미래를 여는 힘찬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갈등의 현장이 되어 군살처럼 견고해 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공동체가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시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현재의 변화, 이동의 방향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 갈등 및 남북 대립, 빈부격차 확대, 저출산·고령화, 1인가구 확대, 저성장 경제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미래신문>이 빠른 속도로 변화, 이동하고 있는 시대에 <제1부: 자연환경의 악화>, <제2부: 과학기술의 진화>, <제3부: 인간의식의 변화>에 이어 <제4부: 국가안위의 심화>에 대해 분석해 본다.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며 민초들에게 던진 말이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사진=SBS드라마 ‘녹두꽃’>   ◆ 한국병의 현황: 이념 대결, 자살, 저출산 등 중병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일으킨 이념전쟁이다.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3년1개월 동안 이 땅을 피로 물들이며 최소 385만명이 희생됐다. 한국전쟁은 현재 ‘정전 상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더구나 남한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사실상의 내전을 계속해 왔다. 이날도 광화문, 서울역 등에서 총칼 없는 이념전쟁이 벌어졌다.   네이버 등 포털의 정치뉴스 댓글을 보면 절망적이다.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국회가 한 술 더 떠서 더욱 흥분한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자기만 선이고 남은 다 악이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조금도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 품격’은 사라진지 오래다. 조금만 틈만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다. 심지어 욕하는 사람이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 서로가 잘 했다고 박장대소한다.   국가안위가 흔들리는 사이 서민들은 매일 절망한다. 영세업자와 중소기업들은 경기불황으로 빚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5월 20일 의정부 가족 3명, 5월 7일 김포 모자 2명, 5월 5일 어린이날 시흥 일가족 4명 등 생활고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유난히 많았다. 국가경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미혼, 이혼 등에 따른 1인가구의 증가가 저출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2019년 6월 23일 발표한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1인가구는 약 562만가구에 이른다. 이는 전체 인구 5142만명중 10.9%, 100명 중 11명은 혼자 살고 있다. 전체 가구 수로 기준을 바꾸면 그 비중은 28.6%로 한층 더 커진다. 2030년에는 720만가구로 2017년보다 28.1% 늘어날 전망이다. 1인가구 증가세가 예상치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하기 힘들다. 이로 인해 취업포기에 이어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가 줄을 잇는다. 작년 합계출산율 0.98을 기록했다. 이는 여성 1명당 평생 동안 아이 1명도 안 낳는다는 얘기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지난 2006년 이후 13년간 최소 143조원을 투입해지만 실패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월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73.4%가 “청년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하여 희망을 주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빈부의 대결이 아닌 빈자와 빈자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희망이 아닌 공포 같은 현실이다. <사진=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한국병의 대책: “전봉준 장군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자살’중이거나 ‘국가멸망’중이다. 국가안위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구하기’를 위한 대책이 무엇일까? 먼저 정부와 국회 등 기성 정치권이 현재의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노동계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서로가 대화와 협상이 실종된 채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있다. 국가공동체는 뒷전이고 그들만의 이익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기대난망이다.   종교계는 어떨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계가 오히려 내부문제로 고소고발 등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화, 극우화되어 오히려 공동체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신뢰의 종교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한국병을 치유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어느 누구도 한국병 치유에 별 관심이 없다. 각자 도생에 서로 정신이 없다. 모두가 분주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국가공동체의 생존과 미래에는 무관심하다.   다행히 이따금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전해진다. 6월 13일 37년간 간호사의 길을 걸어온 고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전 재산을 모교에 쾌척했다. 고인은 평소 추운 겨울을 외투 한 벌로 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6월 6일에는 동대문구 전농1동에서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전 재산 1억8000여만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진짜로 기부해야 할 정치인, 기업가, 종교인 등 사회 지도자들은 없다.   사실 많은 정치인과 기업가, 종교인 등은 개인의 치부를 위해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세계최고 부자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의 전 부인인 매킨지 베조스는 5월 29일 자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월가 사모펀드 황제’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는 6월 19일 영국 옥스퍼드대에 1억5000만파운드(약 2217억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서구의 유명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대한민국은 양심이나 정의에 호소하여 한국병을 치유하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한국병의 주요 원인이 개인의 게으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조적, 제도적 탓이 더 크다. 입시나 취업 등이 계급화 되어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와 억압, 약탈 등이 철저히 구조화되었다. 즉 한국은 빈부가 2대8의 사회로 계급화, 구조화되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득권층에 공정한 배분, 기회의 공평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전봉준 장군을 살려내어 길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 시멘트벽을 쌓아 놓았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먼 길을 돌아 등하교해야 했다. <사진=SBS>   ◆ 한국병의 미래: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생충>은 2019년 5월 25일 폐막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정했다는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빈부격차의 불평등 문제였다. 이 영화가 특히 세계적 관심을 끈 것은 약자끼리, 빈자끼리의 생존투쟁이었다. 기존의 대립개념인 빈부간의 대결이 아니었다. 약자들, 빈자들끼리의 싸움이었다.   현재 세계 각국은 물론 인류사회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무엇일까? 세계미래신문이 특별기획으로 앞에서 언급한 <제1부: 자연환경의 악화>나 <제2부: 과학기술의 진화>, <제3부: 인간의식의 변화>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바로 국가안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빈부격차, 불평등 구조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부자와 빈자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빈자와 부자의 생활공간은 넘을 수 없는 ‘철벽’으로 구분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안위의 심대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혁명의 횃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불평등 문제는 급속한 미래 변화와 이동 속에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불평등 문제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첨예한 이데올로기 문제는 우파 대 좌파가 아닌 기득권층과 반기득권층의 대결이다. 이것은 이제 한국에서 서민들에게 꿈꾸는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을 의미한다. 개천에서 용도 나오지 않는다. 기득권층은 약자나 신인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할 것이다. 국가구조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대결로 들어섰다.   한국의 여야 거대 기득권정당들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과 영세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거짓’이다. 이들은 국회를 3개월 가까이 공회전시키며 민생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그런데도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은 “국회를 바꾸자”라고 한 마디도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약자들이 기득권정당에 ‘기생’하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넘치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거대한 인공장벽을 세우고 있다. 부국의 나라에 빈국의 국민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부국과 빈국을 구분하는 국가장벽이다. 대한민국도 이미 오래전부터 부자들이 빈자들의 출입이나 통행을 하지 못하게 벽을 쌓아왔다. 앞으로 이런 행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전봉준 장군이 다시 현시대로 부활한다면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고 다시 외칠 수 있을까? 그리고 동학혁명군처럼 민초들이 목숨을 걸고 참여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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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
    2019-06-25

국가안보 검색결과

  • [미래창조]“21세기 꿈은 세계 최강 대한민국 건설”…우리는 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변방 반도국가 대한민국이 21세기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신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지도자가 세계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구조 대개혁, 국민의식 대각성을 실현하면 가능할 것이다. 사진은 지난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 독립문의 모습이다. 비가 내려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독립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국가가 주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국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나라를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꿈꾸는 나라,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은 나라를 건설할 수는 없는 것인가?   광복절을 며칠 앞둔 지난 8월 5일이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구단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37) 선수의 두 아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법무부는 7월 31일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겠다”는 추 선수의 장남(14)과 차남(10)의 신고를 수리했다고 이날 관보에 고시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추 선수의 두 아들은 ‘복수국적’을 소유했다가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것이다.   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했을까? 추 선수 측의 한 관계자는 “자녀들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생활이 익숙하고 앞으로 이곳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 추신수도 고민 끝에 자녀들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 “두 자녀가 어려 병역은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추신수 본인도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누리꾼들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추신수의 경기는 이제 안 보겠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한 “미국이 좋으면 이제 한국을 잊으세요. 한국은 이제부터 당신을 버립니다”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생각 잘했다. 나라 돌아가는 꼴 보니 누가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겠냐”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절대 다수는 국가 선택권이 없다. 운명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의 선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대한민국을 세계 최강국가로 만들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모든 세계인들이 살고 싶은 나라, 가장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라, 그런 대한민국을 건설하면 되지 않는가? 소위 ‘위대한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명, 시대적 소명, 선지적 천명을 모두가 깨닫고 행동에 나서면 가능할 것이다.   EBS는 지난 2014년 3월 ‘강대국의 비밀-6부작’을 방영했다. 2년간의 대장정 끝에 세계패권의 비밀을 찾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고대국가가 태동한 기원전 500여 년 전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 속에 무수한 국가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몇몇 강대국들이 등장하여 작게는 수백 년간 길게는 1천년간 세계패권을 휘어잡았다. 이들이 어떻게 패권을 잡고 세계를 움직였을까? 그리고 <세계미래신문>이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강대국의 조건’을 찾아본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는 로마다. 로마는 1천년간 세계를 지배하며 문화융성의 꽃을 피웠다. 이탈리아 변방 작은 도시 로마가 어떻게 세계역사를 지배한 대제국으로 도약했을까? 사진은 고대로마의 도시 모습이다. <사진=pixabay.com>   ◆ 신강대국의 조건(1): 로마 “포용·기회·공영 국가를 건설하라”   기원전 216년 8월 2일 이탈리아 중부 칸나이평원은 로마군의 참혹한 시체로 뒤덮였다. 로마 정예군 8만명은 이날 북아프리카 도시국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끈 5만명의 병사와 단 한 번의 전투로 거의 전멸하였다. 사실상 대학살 당한 셈이다. 로마군은 유럽 역사를 통틀어 이보다 더 처참한 패배는 없었다. 더구나 로마는 이제 자신을 지킬 어떠한 병력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변방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대제국이 되었을까?   로마와 카르타고는 칸나이전쟁 이전에 지중해 패권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공략하여 지중해를 장악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이를 되찾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그것은 5만여 정예병을 차출하여 알프스산맥을 넘어 북이탈리아를 통해 로마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산을 넘는 과정에서 추위와 동상으로 절반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니발은 로마연합 동맹군들을 격파하여 병사들을 포섭하고 다시 5만명이 넘는 대병력을 갖추었다.   한니발은 칸나이전투에서 로마군을 대격파하여 일약 세계적 명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 본진을 치지 않고 남하하였다. 병력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로마연합의 다른 동맹국들이 한니발에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해 진퇴양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열을 갖춘 로마군과 다시 격돌하였으나 패하였다. 로마군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전략을 연구하여 더 뛰어난 전략을 발휘한 것이다.   로마가 한니발에 칸나이전투에서 대패해 국가멸망의 위기에 몰렸으나 로마연합 동맹군이 합세하여 재건할 수 있었다. 만약 한니발의 계책대로 로마연합 동맹군들이 이탈하여 한니발과 합류했더라면 로마는 분명 멸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연합 동맹국들이 왜 한니발과의 동맹을 거부하고 목숨을 걸고 로마와의 동맹을 견고하게 지켰을까? 그것은 ‘로마시민권’ 때문이었다. 로마는 각 도시국가들이 동맹국으로 참여하면 로마 공화국의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로마는 심지어 노예들에게도 10년이 넘으면 해방시켜 자유민의 자격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로마인이 될 수 있는 시민권도 자동 부여했다. 로마는 로마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로마시민권을 부여한 것이다. 로마연합은 차별과 특권이 없는 ‘포용적 공화국’이었다. 개인의 혈통, 출신, 문화, 종교, 인종 등에 대한 어떠한 특혜나 불이익이 없었다. 이는 지금의 세계 패권국 미국과 아주 유사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세계 최강 로마연합 동맹국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같은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다른 도시국가들인 아테네, 그리스, 스파르타 등과는 전혀 달랐다. 이들 도시국가들은 이민족이나 다른 국가들에게 배타적,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모든 것을 바다처럼 포용하고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로마의 동맹국들에게 로마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바로 시민권이 있는 주인이었다. 심지어 식민지나 노예 출신의 자손들도 능력이 있으면 귀족이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로마는 모두의 나라가 되었고, 그리고 모두의 조국이 되었다.   이탈리아 변방의 작은 도시였던 로마는 BC 509년 공화국으로 건국되어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된 AD 476년까지 약 1천년간 대제국 로마시대를 구가했다. 로마가 1천년간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포용’ 때문이었다. 출신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로마연합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누구에게나 ‘로마시민권’과 ‘기회’를 주었다. 사람의 능력을 중시한 기회의 나라, 누구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꿈의 나라였다. 그 결과 로마연합은 세계 최고의 문화융성 국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녀는 여왕에 등극한 후 “세계를 지배하려면 해상을 장악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군개혁을 통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한 사람의 꿈이 영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것이다. 사진은 엘리자베스의 1588년 초상화다. <사진=EBS화면>   ◆ 강대국의 조건(2): 영국 “지도자 리더십이 미래를 결정한다”   16세기 세계패권국가 스페인은 영국보다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왜 스페인이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영국에 패하고 몰락했을까? 영국은 어떻게 무적함대를 거느린 세계 최강 스페인을 무너뜨리고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1558년 1월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잠든 영국’을 깨워 거인으로 키웠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인 왕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앤은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의 시녀였는데,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지 3년 도 채 되지 않은 1536년 5월 19일 참수당했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남편 헨리 8세가 처형을 지시했다.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로 취급 받는 등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25세에 마침내 영국 여왕에 등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극할 당시 영국은 종교문제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문제 등 엄청난 문제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더구나 영국 왕실은 매우 가난했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의 보물선을 탈취하는 해적을 보호해주고 해적들로부터 그 대가로 금품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화폐개혁 등 대대적인 국가구조 대개조를 단행했다. 특히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바다를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전함과 무기를 현대화하는 등 해군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했다.   그런데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하는 영국의 해적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더구나 이단적인 여왕이 이끄는 신교도 국가 영국은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펠리페 2세는 1백여 년간 누려온 과거의 승리만을 기억하고 상대를 과소평가한 채 영국 공격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1588년 8월 칼레해전에서 스페인 해군을 압도할 수 있는 무기와 전략을 개발하여 전통적 해전에 익숙한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스페인의 아르마다 무적함대는 육군 위주였다.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는 독실한 정통 가톨릭 신자로 변화를 거부했다. 반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상장악을 통한 세계지배’라는 국가비전을 내세우고 대대적으로 해군을 개혁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적출신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함과 함포는 물론 전략도 개발했다. 마침내 스페인 무적함대를 맞이하여 격침시켰다. 그리고 대영제국의 깃발을 곳곳에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녀가 어떻게 위대한 나라, 영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은 먼저 여왕이 된 후 국가비전을 명확히 했다. 그녀는 여왕 즉위식 날 이를 실현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즉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는 백성들과의 사랑의 결혼을 상징하는 반지를 꼈고, 무게가 3㎏이나 되는 무거운 왕관을 머리에 썼다. 이것은 여왕으로서 결혼을 하지 않고 오직 백성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약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재위 45년간 영국은 극빈국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영국 여왕은 해군개혁을 통해 칼레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과 스페인의 미래를 바꿔 놓았다. 세계 제국 스페인은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패와 논란도 있었지만 그녀가 죽은 후 몇몇 사람들은 ‘다시 그녀와 현실에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향수에 젖어 흠모하기도 했다. 그녀의 위대한 스토리는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살아 있는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몽골의 초대 황제인 칭기즈칸은 능력과 충성심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로마제국처럼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은 칭기즈칸의 동상 모습이다. <사진=EBS화면>   ◆ 강대국의 조건(3): 몽골 “전략이 세계를 정복하는 비책이다”   중앙아시아의 야만적인 유목민족에서 출발한 몽골이 어떻게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인류 역사상 최대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탁월한 전략’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몽골’이라는 말만 들으면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이 “순사가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는 경우와 비슷했다. 유럽인들에게 몽골군은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신출귀몰한 몽골군의 전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1241년 3월 24일 폴란드 지역의 중심도시였던 크라코프도 채 한 달을 못 버티고 몽골군에 점령당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800여 년 전의 몽골 침입을 매일 되새기고 있다. 성마리아 성당의 첨탑에 올라간 나팔수는 경고나팔을 분다. 그런데 항상 나팔은 중간에 멈추고 만다. 당시 나팔을 불던 나팔수가 몽골군이 쏜 화살이 날아와 목에 꽂혀서 더 이상 경고나팔을 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라코프를 공략한 몽골군은 이번에는 독일로 향했다. 1241년 다뉴브 강변을 순찰하던 몽골군 장교 한명이 생포된다. 독일 빈의 군대는 이 장교의 정체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영국인이었다. 영어뿐 아니라 아랍어와 몽골어까지 능숙하게 할 줄 알았던 지식인이었다. 이처럼 몽골군은 점령한 지역을 관용과 포용으로 모두 동화시켜 우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대신 거부하면 잔혹하게 짓밟았다.   몽골군의 최초 규모는 10만명 정도로 아주 작았다. 몽골제국의 전체 인구는 고작 100만명 정도였다. 당시의 몽골은 양육강식의 세상이었다.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1162~1227)의 아버지 예수게이 역시 타타르족에게 암살당했다. 아버지가 죽자 어린 칭기즈칸은 친족과 부족에게서 버림받았다.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칭기즈칸은 씨족 중심의 사회가 아닌 동료들의 충성심과 우정을 더 믿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능력과 충성심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원칙을 세웠다. 혈연, 씨족, 부족사회였던 몽골 초원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방식을 적용했다. 과거에는 패하면 모두 몰살시켰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패자를 자신의 동족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정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몽골 초원의 강자가 되는 핵심 전략이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칭기즈칸의 관용적인 자세는 그의 후계자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이것은 로마제국처럼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100만명의 몽골인들이 세계 인구 3분의 1인 1억명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몽골은 빠른 말을 이용해 소통하고 지배했다. 몽골군은 정벌전에서 연전연승했다. 그 승리의 핵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였다. 전투식량인 ‘보르츠’는 가축을 잡아 말린 육포와 마른 젖 덩어리로 최대한 경량화하여 개인이 소지하도록 했다. 속도와 간편함으로 적을 유린한 것이다. 몽골군은 말 위해서 식사하고, 잠을 자며, 신속한 기동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스피드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몽골군은 관용과 포용으로 점령한 모든 지역의 사람들과 기술들을 활용하여 연합군을 편성하였다. 그래서 몽골군은 다국적군이었다. 전투기술과 신무기들도 곳곳에서 도입하였다. 또한 동과 서,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였다. 도로망과 역참제는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칭기즈칸의 경청 리더십과 이를 활용한 창조적 변칙 전략은 정복과 제국 건설의 핵심 수단이었다. 몽골제국은 철저히 전략으로 만들고, 전략으로 유지되었다.   고대국가가 태동한 기원전 500여 년 전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 속에 무수한 국가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몇몇 강대국들이 등장하여 작게는 수백 년간 길게는 1천년간 세계패권을 휘어잡았다. 그렇다면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세계미래신문>    ◆ 21세기의 국가 흥망: “융합·창조로 더 나은 미래를 열어라”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변방에 위치한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이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신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국가목표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를 위한 국가목표 설계는 물론 상상력조차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생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허황된 것’이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탈리아 변방 로마는 물론 유럽의 작은 섬나라 영국, 심지어 황량한 초원국가 몽골도 세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 나라들은 대한민국보다 절대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로마는 연합을 위한 ‘포용’, 영국은 ‘리더’의 혁신, 몽골은 창의적 ‘전략’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이들 강대국의 3대 조건을 갖춘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강대국의 비밀을 확인해 보자. 3000여년의 국가 역사에서 흥망성쇠를 결정한 요인들은 무엇이었을까? 흥성한 국가들은 포용, 관용, 기회, 다양, 창의, 혁신, 충성, 헌신, 열정이 강했다. 반면 쇠망한 국가들은 독선, 차별, 배척, 오만, 파벌, 정쟁, 탐욕, 타락, 배반이 두드러졌다. 인구나 영토 등은 세계 패권국이 되는 데 특별히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국가 붕괴의 핵심 요인은 정쟁과 타락·분열, 융성 요인은 혁신과 헌신·충성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 최강의 신강대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군사력이나 폭력적 강요 없이 다른 국가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정신적, 사상적, 문화적 힘을 가진 위대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즉,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열 사상, 철학을 토대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최고의 문화시대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홍익사상과 한류문화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단합하여 “한번 해보자”는 결심만 하면 가능할 것이다.   둘째는 남북국가연합을 조속히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몽골, 이스라엘, 베트남, 러시아 등과 세계국가연합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초저출산국이자 초고령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국가 존망이 달린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마처럼 포용을 기반으로 국가연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탈북인이나 조선족 등 자기 동포들조차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절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없다. 국가구조 대개혁과 국민의식 대각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라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협업, 공유, 창조의 국가연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강대국을 “많은 인구, 넓은 영토,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을 갖춘 국가”라고 정의했다. 이런 강대국은 과거 패권주의적 제국이다. 신강대국은 권력이 아닌 사상과 문화, 관용으로 다양한 인종과 집단을 자연스럽게 융화시켜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게 만드는 나라다. 한국은 IT를 기반으로 세계적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인류 모두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신강대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인류는 이상기온 등 자연환경의 악화, AI로봇 등 과학기술의 진화, 저출산 등 인간의식의 변화, 국제질서의 혼란 등 국가안위의 심화라는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으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는 지속 가능한 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이끌 새로운 리더, 새로운 사상, 새로운 혁신을 갈망하고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전면 등장할 때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21세기 신강대국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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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
    2019-09-12
  • [미래창조]1인 가구·저출산 증가 “지금 대한민국은 자살 중“…그 미래는?
    “제대로 된 나라를 세워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수만명이 뭉쳤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싸웠으나 일본군의 신무기 앞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신은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SBS드라마 ‘녹두꽃’>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요즘 방영중인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며 민초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외적의 무리를 몰아낼 것이다”며 양반과 부호 방백(관찰사), 수령에게 고통 받는 민초들에게 동학혁명의 대의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동학혁명은 125년전인 1894년 억압과 차별, 멸시를 받아온 이 땅의 민중들이 조선 강토를 피로 물들이며 봉건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근대국가의 신 새벽을 열어젖힌 대사건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자유와 평등, 민족 자주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동학혁명은 핵심 인물 전봉준만의 영웅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20여만명의 혁명군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외친 분노와 항거, 희망을 담은 우리 선대들의 이야기다.   동학혁명은 일종의 건국혁명이었다. 전봉준의 지휘 아래 서울로 진격하던 혁명군은 공주 우금티에서 조·일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혁명군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어도 항전했으나, 일본군의 첨단 신무기를 이겨낼 수 없었다. 동학혁명군의 꿈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정신은 살아남아 3·1건국운동, 항일건국투쟁, 4·19건국의거, 6월항쟁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모두가 “나라다운 나라를 건국하여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피로 쓴 근현대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였다.   과연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여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어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가진자와 없는자, 사대와 자주 등의 대립과 갈등으로 허우적대고 있다. 더 나은 미래의 꿈과 대한민국 건국의 완성을 향한 동학혁명군 같은 도전은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 서울역, 시청앞, 국회 등은 국가의 미래를 여는 힘찬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갈등의 현장이 되어 군살처럼 견고해 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공동체가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시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현재의 변화, 이동의 방향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 갈등 및 남북 대립, 빈부격차 확대, 저출산·고령화, 1인가구 확대, 저성장 경제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미래신문>이 빠른 속도로 변화, 이동하고 있는 시대에 <제1부: 자연환경의 악화>, <제2부: 과학기술의 진화>, <제3부: 인간의식의 변화>에 이어 <제4부: 국가안위의 심화>에 대해 분석해 본다.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며 민초들에게 던진 말이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사진=SBS드라마 ‘녹두꽃’>   ◆ 한국병의 현황: 이념 대결, 자살, 저출산 등 중병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일으킨 이념전쟁이다.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3년1개월 동안 이 땅을 피로 물들이며 최소 385만명이 희생됐다. 한국전쟁은 현재 ‘정전 상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더구나 남한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사실상의 내전을 계속해 왔다. 이날도 광화문, 서울역 등에서 총칼 없는 이념전쟁이 벌어졌다.   네이버 등 포털의 정치뉴스 댓글을 보면 절망적이다.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국회가 한 술 더 떠서 더욱 흥분한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자기만 선이고 남은 다 악이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조금도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 품격’은 사라진지 오래다. 조금만 틈만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다. 심지어 욕하는 사람이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 서로가 잘 했다고 박장대소한다.   국가안위가 흔들리는 사이 서민들은 매일 절망한다. 영세업자와 중소기업들은 경기불황으로 빚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5월 20일 의정부 가족 3명, 5월 7일 김포 모자 2명, 5월 5일 어린이날 시흥 일가족 4명 등 생활고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유난히 많았다. 국가경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미혼, 이혼 등에 따른 1인가구의 증가가 저출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2019년 6월 23일 발표한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1인가구는 약 562만가구에 이른다. 이는 전체 인구 5142만명중 10.9%, 100명 중 11명은 혼자 살고 있다. 전체 가구 수로 기준을 바꾸면 그 비중은 28.6%로 한층 더 커진다. 2030년에는 720만가구로 2017년보다 28.1% 늘어날 전망이다. 1인가구 증가세가 예상치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하기 힘들다. 이로 인해 취업포기에 이어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가 줄을 잇는다. 작년 합계출산율 0.98을 기록했다. 이는 여성 1명당 평생 동안 아이 1명도 안 낳는다는 얘기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지난 2006년 이후 13년간 최소 143조원을 투입해지만 실패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월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73.4%가 “청년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하여 희망을 주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빈부의 대결이 아닌 빈자와 빈자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희망이 아닌 공포 같은 현실이다. <사진=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한국병의 대책: “전봉준 장군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자살’중이거나 ‘국가멸망’중이다. 국가안위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구하기’를 위한 대책이 무엇일까? 먼저 정부와 국회 등 기성 정치권이 현재의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노동계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서로가 대화와 협상이 실종된 채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있다. 국가공동체는 뒷전이고 그들만의 이익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기대난망이다.   종교계는 어떨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계가 오히려 내부문제로 고소고발 등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화, 극우화되어 오히려 공동체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신뢰의 종교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한국병을 치유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어느 누구도 한국병 치유에 별 관심이 없다. 각자 도생에 서로 정신이 없다. 모두가 분주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국가공동체의 생존과 미래에는 무관심하다.   다행히 이따금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전해진다. 6월 13일 37년간 간호사의 길을 걸어온 고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전 재산을 모교에 쾌척했다. 고인은 평소 추운 겨울을 외투 한 벌로 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6월 6일에는 동대문구 전농1동에서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전 재산 1억8000여만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진짜로 기부해야 할 정치인, 기업가, 종교인 등 사회 지도자들은 없다.   사실 많은 정치인과 기업가, 종교인 등은 개인의 치부를 위해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세계최고 부자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의 전 부인인 매킨지 베조스는 5월 29일 자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월가 사모펀드 황제’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는 6월 19일 영국 옥스퍼드대에 1억5000만파운드(약 2217억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서구의 유명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대한민국은 양심이나 정의에 호소하여 한국병을 치유하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한국병의 주요 원인이 개인의 게으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조적, 제도적 탓이 더 크다. 입시나 취업 등이 계급화 되어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와 억압, 약탈 등이 철저히 구조화되었다. 즉 한국은 빈부가 2대8의 사회로 계급화, 구조화되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득권층에 공정한 배분, 기회의 공평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전봉준 장군을 살려내어 길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 시멘트벽을 쌓아 놓았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먼 길을 돌아 등하교해야 했다. <사진=SBS>   ◆ 한국병의 미래: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생충>은 2019년 5월 25일 폐막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정했다는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빈부격차의 불평등 문제였다. 이 영화가 특히 세계적 관심을 끈 것은 약자끼리, 빈자끼리의 생존투쟁이었다. 기존의 대립개념인 빈부간의 대결이 아니었다. 약자들, 빈자들끼리의 싸움이었다.   현재 세계 각국은 물론 인류사회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무엇일까? 세계미래신문이 특별기획으로 앞에서 언급한 <제1부: 자연환경의 악화>나 <제2부: 과학기술의 진화>, <제3부: 인간의식의 변화>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바로 국가안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빈부격차, 불평등 구조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부자와 빈자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빈자와 부자의 생활공간은 넘을 수 없는 ‘철벽’으로 구분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안위의 심대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혁명의 횃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불평등 문제는 급속한 미래 변화와 이동 속에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불평등 문제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첨예한 이데올로기 문제는 우파 대 좌파가 아닌 기득권층과 반기득권층의 대결이다. 이것은 이제 한국에서 서민들에게 꿈꾸는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을 의미한다. 개천에서 용도 나오지 않는다. 기득권층은 약자나 신인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할 것이다. 국가구조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대결로 들어섰다.   한국의 여야 거대 기득권정당들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과 영세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거짓’이다. 이들은 국회를 3개월 가까이 공회전시키며 민생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그런데도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은 “국회를 바꾸자”라고 한 마디도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약자들이 기득권정당에 ‘기생’하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넘치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거대한 인공장벽을 세우고 있다. 부국의 나라에 빈국의 국민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부국과 빈국을 구분하는 국가장벽이다. 대한민국도 이미 오래전부터 부자들이 빈자들의 출입이나 통행을 하지 못하게 벽을 쌓아왔다. 앞으로 이런 행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전봉준 장군이 다시 현시대로 부활한다면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고 다시 외칠 수 있을까? 그리고 동학혁명군처럼 민초들이 목숨을 걸고 참여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 국가안보
    • 공의
    2019-06-25

미래전략 검색결과

  • [미래창조]“21세기 꿈은 세계 최강 대한민국 건설”…우리는 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변방 반도국가 대한민국이 21세기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신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지도자가 세계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구조 대개혁, 국민의식 대각성을 실현하면 가능할 것이다. 사진은 지난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 독립문의 모습이다. 비가 내려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독립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국가가 주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국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나라를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꿈꾸는 나라,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은 나라를 건설할 수는 없는 것인가?   광복절을 며칠 앞둔 지난 8월 5일이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구단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37) 선수의 두 아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법무부는 7월 31일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겠다”는 추 선수의 장남(14)과 차남(10)의 신고를 수리했다고 이날 관보에 고시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추 선수의 두 아들은 ‘복수국적’을 소유했다가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것이다.   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했을까? 추 선수 측의 한 관계자는 “자녀들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생활이 익숙하고 앞으로 이곳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 추신수도 고민 끝에 자녀들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 “두 자녀가 어려 병역은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추신수 본인도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누리꾼들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추신수의 경기는 이제 안 보겠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한 “미국이 좋으면 이제 한국을 잊으세요. 한국은 이제부터 당신을 버립니다”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생각 잘했다. 나라 돌아가는 꼴 보니 누가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겠냐”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절대 다수는 국가 선택권이 없다. 운명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의 선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대한민국을 세계 최강국가로 만들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모든 세계인들이 살고 싶은 나라, 가장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라, 그런 대한민국을 건설하면 되지 않는가? 소위 ‘위대한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명, 시대적 소명, 선지적 천명을 모두가 깨닫고 행동에 나서면 가능할 것이다.   EBS는 지난 2014년 3월 ‘강대국의 비밀-6부작’을 방영했다. 2년간의 대장정 끝에 세계패권의 비밀을 찾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고대국가가 태동한 기원전 500여 년 전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 속에 무수한 국가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몇몇 강대국들이 등장하여 작게는 수백 년간 길게는 1천년간 세계패권을 휘어잡았다. 이들이 어떻게 패권을 잡고 세계를 움직였을까? 그리고 <세계미래신문>이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강대국의 조건’을 찾아본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는 로마다. 로마는 1천년간 세계를 지배하며 문화융성의 꽃을 피웠다. 이탈리아 변방 작은 도시 로마가 어떻게 세계역사를 지배한 대제국으로 도약했을까? 사진은 고대로마의 도시 모습이다. <사진=pixabay.com>   ◆ 신강대국의 조건(1): 로마 “포용·기회·공영 국가를 건설하라”   기원전 216년 8월 2일 이탈리아 중부 칸나이평원은 로마군의 참혹한 시체로 뒤덮였다. 로마 정예군 8만명은 이날 북아프리카 도시국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끈 5만명의 병사와 단 한 번의 전투로 거의 전멸하였다. 사실상 대학살 당한 셈이다. 로마군은 유럽 역사를 통틀어 이보다 더 처참한 패배는 없었다. 더구나 로마는 이제 자신을 지킬 어떠한 병력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변방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대제국이 되었을까?   로마와 카르타고는 칸나이전쟁 이전에 지중해 패권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공략하여 지중해를 장악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이를 되찾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그것은 5만여 정예병을 차출하여 알프스산맥을 넘어 북이탈리아를 통해 로마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산을 넘는 과정에서 추위와 동상으로 절반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니발은 로마연합 동맹군들을 격파하여 병사들을 포섭하고 다시 5만명이 넘는 대병력을 갖추었다.   한니발은 칸나이전투에서 로마군을 대격파하여 일약 세계적 명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 본진을 치지 않고 남하하였다. 병력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로마연합의 다른 동맹국들이 한니발에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해 진퇴양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열을 갖춘 로마군과 다시 격돌하였으나 패하였다. 로마군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전략을 연구하여 더 뛰어난 전략을 발휘한 것이다.   로마가 한니발에 칸나이전투에서 대패해 국가멸망의 위기에 몰렸으나 로마연합 동맹군이 합세하여 재건할 수 있었다. 만약 한니발의 계책대로 로마연합 동맹군들이 이탈하여 한니발과 합류했더라면 로마는 분명 멸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연합 동맹국들이 왜 한니발과의 동맹을 거부하고 목숨을 걸고 로마와의 동맹을 견고하게 지켰을까? 그것은 ‘로마시민권’ 때문이었다. 로마는 각 도시국가들이 동맹국으로 참여하면 로마 공화국의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로마는 심지어 노예들에게도 10년이 넘으면 해방시켜 자유민의 자격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로마인이 될 수 있는 시민권도 자동 부여했다. 로마는 로마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로마시민권을 부여한 것이다. 로마연합은 차별과 특권이 없는 ‘포용적 공화국’이었다. 개인의 혈통, 출신, 문화, 종교, 인종 등에 대한 어떠한 특혜나 불이익이 없었다. 이는 지금의 세계 패권국 미국과 아주 유사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세계 최강 로마연합 동맹국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같은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다른 도시국가들인 아테네, 그리스, 스파르타 등과는 전혀 달랐다. 이들 도시국가들은 이민족이나 다른 국가들에게 배타적,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모든 것을 바다처럼 포용하고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로마의 동맹국들에게 로마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바로 시민권이 있는 주인이었다. 심지어 식민지나 노예 출신의 자손들도 능력이 있으면 귀족이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로마는 모두의 나라가 되었고, 그리고 모두의 조국이 되었다.   이탈리아 변방의 작은 도시였던 로마는 BC 509년 공화국으로 건국되어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된 AD 476년까지 약 1천년간 대제국 로마시대를 구가했다. 로마가 1천년간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포용’ 때문이었다. 출신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로마연합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누구에게나 ‘로마시민권’과 ‘기회’를 주었다. 사람의 능력을 중시한 기회의 나라, 누구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꿈의 나라였다. 그 결과 로마연합은 세계 최고의 문화융성 국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녀는 여왕에 등극한 후 “세계를 지배하려면 해상을 장악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군개혁을 통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한 사람의 꿈이 영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것이다. 사진은 엘리자베스의 1588년 초상화다. <사진=EBS화면>   ◆ 강대국의 조건(2): 영국 “지도자 리더십이 미래를 결정한다”   16세기 세계패권국가 스페인은 영국보다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왜 스페인이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영국에 패하고 몰락했을까? 영국은 어떻게 무적함대를 거느린 세계 최강 스페인을 무너뜨리고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1558년 1월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잠든 영국’을 깨워 거인으로 키웠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인 왕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앤은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의 시녀였는데,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지 3년 도 채 되지 않은 1536년 5월 19일 참수당했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남편 헨리 8세가 처형을 지시했다.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로 취급 받는 등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25세에 마침내 영국 여왕에 등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극할 당시 영국은 종교문제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문제 등 엄청난 문제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더구나 영국 왕실은 매우 가난했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의 보물선을 탈취하는 해적을 보호해주고 해적들로부터 그 대가로 금품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화폐개혁 등 대대적인 국가구조 대개조를 단행했다. 특히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바다를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전함과 무기를 현대화하는 등 해군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했다.   그런데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하는 영국의 해적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더구나 이단적인 여왕이 이끄는 신교도 국가 영국은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펠리페 2세는 1백여 년간 누려온 과거의 승리만을 기억하고 상대를 과소평가한 채 영국 공격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1588년 8월 칼레해전에서 스페인 해군을 압도할 수 있는 무기와 전략을 개발하여 전통적 해전에 익숙한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스페인의 아르마다 무적함대는 육군 위주였다.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는 독실한 정통 가톨릭 신자로 변화를 거부했다. 반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상장악을 통한 세계지배’라는 국가비전을 내세우고 대대적으로 해군을 개혁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적출신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함과 함포는 물론 전략도 개발했다. 마침내 스페인 무적함대를 맞이하여 격침시켰다. 그리고 대영제국의 깃발을 곳곳에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녀가 어떻게 위대한 나라, 영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은 먼저 여왕이 된 후 국가비전을 명확히 했다. 그녀는 여왕 즉위식 날 이를 실현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즉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는 백성들과의 사랑의 결혼을 상징하는 반지를 꼈고, 무게가 3㎏이나 되는 무거운 왕관을 머리에 썼다. 이것은 여왕으로서 결혼을 하지 않고 오직 백성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약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재위 45년간 영국은 극빈국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영국 여왕은 해군개혁을 통해 칼레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과 스페인의 미래를 바꿔 놓았다. 세계 제국 스페인은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패와 논란도 있었지만 그녀가 죽은 후 몇몇 사람들은 ‘다시 그녀와 현실에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향수에 젖어 흠모하기도 했다. 그녀의 위대한 스토리는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살아 있는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몽골의 초대 황제인 칭기즈칸은 능력과 충성심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로마제국처럼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은 칭기즈칸의 동상 모습이다. <사진=EBS화면>   ◆ 강대국의 조건(3): 몽골 “전략이 세계를 정복하는 비책이다”   중앙아시아의 야만적인 유목민족에서 출발한 몽골이 어떻게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인류 역사상 최대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탁월한 전략’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몽골’이라는 말만 들으면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이 “순사가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는 경우와 비슷했다. 유럽인들에게 몽골군은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신출귀몰한 몽골군의 전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1241년 3월 24일 폴란드 지역의 중심도시였던 크라코프도 채 한 달을 못 버티고 몽골군에 점령당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800여 년 전의 몽골 침입을 매일 되새기고 있다. 성마리아 성당의 첨탑에 올라간 나팔수는 경고나팔을 분다. 그런데 항상 나팔은 중간에 멈추고 만다. 당시 나팔을 불던 나팔수가 몽골군이 쏜 화살이 날아와 목에 꽂혀서 더 이상 경고나팔을 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라코프를 공략한 몽골군은 이번에는 독일로 향했다. 1241년 다뉴브 강변을 순찰하던 몽골군 장교 한명이 생포된다. 독일 빈의 군대는 이 장교의 정체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영국인이었다. 영어뿐 아니라 아랍어와 몽골어까지 능숙하게 할 줄 알았던 지식인이었다. 이처럼 몽골군은 점령한 지역을 관용과 포용으로 모두 동화시켜 우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대신 거부하면 잔혹하게 짓밟았다.   몽골군의 최초 규모는 10만명 정도로 아주 작았다. 몽골제국의 전체 인구는 고작 100만명 정도였다. 당시의 몽골은 양육강식의 세상이었다.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1162~1227)의 아버지 예수게이 역시 타타르족에게 암살당했다. 아버지가 죽자 어린 칭기즈칸은 친족과 부족에게서 버림받았다.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칭기즈칸은 씨족 중심의 사회가 아닌 동료들의 충성심과 우정을 더 믿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능력과 충성심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원칙을 세웠다. 혈연, 씨족, 부족사회였던 몽골 초원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방식을 적용했다. 과거에는 패하면 모두 몰살시켰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패자를 자신의 동족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정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몽골 초원의 강자가 되는 핵심 전략이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칭기즈칸의 관용적인 자세는 그의 후계자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이것은 로마제국처럼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100만명의 몽골인들이 세계 인구 3분의 1인 1억명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몽골은 빠른 말을 이용해 소통하고 지배했다. 몽골군은 정벌전에서 연전연승했다. 그 승리의 핵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였다. 전투식량인 ‘보르츠’는 가축을 잡아 말린 육포와 마른 젖 덩어리로 최대한 경량화하여 개인이 소지하도록 했다. 속도와 간편함으로 적을 유린한 것이다. 몽골군은 말 위해서 식사하고, 잠을 자며, 신속한 기동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스피드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몽골군은 관용과 포용으로 점령한 모든 지역의 사람들과 기술들을 활용하여 연합군을 편성하였다. 그래서 몽골군은 다국적군이었다. 전투기술과 신무기들도 곳곳에서 도입하였다. 또한 동과 서,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였다. 도로망과 역참제는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칭기즈칸의 경청 리더십과 이를 활용한 창조적 변칙 전략은 정복과 제국 건설의 핵심 수단이었다. 몽골제국은 철저히 전략으로 만들고, 전략으로 유지되었다.   고대국가가 태동한 기원전 500여 년 전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 속에 무수한 국가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몇몇 강대국들이 등장하여 작게는 수백 년간 길게는 1천년간 세계패권을 휘어잡았다. 그렇다면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세계미래신문>    ◆ 21세기의 국가 흥망: “융합·창조로 더 나은 미래를 열어라”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변방에 위치한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이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신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국가목표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를 위한 국가목표 설계는 물론 상상력조차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생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허황된 것’이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탈리아 변방 로마는 물론 유럽의 작은 섬나라 영국, 심지어 황량한 초원국가 몽골도 세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 나라들은 대한민국보다 절대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로마는 연합을 위한 ‘포용’, 영국은 ‘리더’의 혁신, 몽골은 창의적 ‘전략’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이들 강대국의 3대 조건을 갖춘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강대국의 비밀을 확인해 보자. 3000여년의 국가 역사에서 흥망성쇠를 결정한 요인들은 무엇이었을까? 흥성한 국가들은 포용, 관용, 기회, 다양, 창의, 혁신, 충성, 헌신, 열정이 강했다. 반면 쇠망한 국가들은 독선, 차별, 배척, 오만, 파벌, 정쟁, 탐욕, 타락, 배반이 두드러졌다. 인구나 영토 등은 세계 패권국이 되는 데 특별히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국가 붕괴의 핵심 요인은 정쟁과 타락·분열, 융성 요인은 혁신과 헌신·충성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 최강의 신강대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군사력이나 폭력적 강요 없이 다른 국가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정신적, 사상적, 문화적 힘을 가진 위대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즉,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열 사상, 철학을 토대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최고의 문화시대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홍익사상과 한류문화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단합하여 “한번 해보자”는 결심만 하면 가능할 것이다.   둘째는 남북국가연합을 조속히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몽골, 이스라엘, 베트남, 러시아 등과 세계국가연합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초저출산국이자 초고령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국가 존망이 달린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마처럼 포용을 기반으로 국가연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탈북인이나 조선족 등 자기 동포들조차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절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없다. 국가구조 대개혁과 국민의식 대각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라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협업, 공유, 창조의 국가연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강대국을 “많은 인구, 넓은 영토,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을 갖춘 국가”라고 정의했다. 이런 강대국은 과거 패권주의적 제국이다. 신강대국은 권력이 아닌 사상과 문화, 관용으로 다양한 인종과 집단을 자연스럽게 융화시켜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게 만드는 나라다. 한국은 IT를 기반으로 세계적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인류 모두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신강대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인류는 이상기온 등 자연환경의 악화, AI로봇 등 과학기술의 진화, 저출산 등 인간의식의 변화, 국제질서의 혼란 등 국가안위의 심화라는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으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는 지속 가능한 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이끌 새로운 리더, 새로운 사상, 새로운 혁신을 갈망하고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전면 등장할 때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21세기 신강대국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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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의
    201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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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창조]“21세기 꿈은 세계 최강 대한민국 건설”…우리는 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변방 반도국가 대한민국이 21세기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신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지도자가 세계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구조 대개혁, 국민의식 대각성을 실현하면 가능할 것이다. 사진은 지난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 독립문의 모습이다. 비가 내려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독립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장영권 대표기자>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국가가 주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국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나라를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꿈꾸는 나라,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은 나라를 건설할 수는 없는 것인가?   광복절을 며칠 앞둔 지난 8월 5일이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구단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37) 선수의 두 아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법무부는 7월 31일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겠다”는 추 선수의 장남(14)과 차남(10)의 신고를 수리했다고 이날 관보에 고시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추 선수의 두 아들은 ‘복수국적’을 소유했다가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것이다.   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했을까? 추 선수 측의 한 관계자는 “자녀들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생활이 익숙하고 앞으로 이곳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 추신수도 고민 끝에 자녀들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 “두 자녀가 어려 병역은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추신수 본인도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누리꾼들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추신수의 경기는 이제 안 보겠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한 “미국이 좋으면 이제 한국을 잊으세요. 한국은 이제부터 당신을 버립니다”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생각 잘했다. 나라 돌아가는 꼴 보니 누가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겠냐”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절대 다수는 국가 선택권이 없다. 운명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의 선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대한민국을 세계 최강국가로 만들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모든 세계인들이 살고 싶은 나라, 가장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라, 그런 대한민국을 건설하면 되지 않는가? 소위 ‘위대한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명, 시대적 소명, 선지적 천명을 모두가 깨닫고 행동에 나서면 가능할 것이다.   EBS는 지난 2014년 3월 ‘강대국의 비밀-6부작’을 방영했다. 2년간의 대장정 끝에 세계패권의 비밀을 찾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고대국가가 태동한 기원전 500여 년 전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 속에 무수한 국가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몇몇 강대국들이 등장하여 작게는 수백 년간 길게는 1천년간 세계패권을 휘어잡았다. 이들이 어떻게 패권을 잡고 세계를 움직였을까? 그리고 <세계미래신문>이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강대국의 조건’을 찾아본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는 로마다. 로마는 1천년간 세계를 지배하며 문화융성의 꽃을 피웠다. 이탈리아 변방 작은 도시 로마가 어떻게 세계역사를 지배한 대제국으로 도약했을까? 사진은 고대로마의 도시 모습이다. <사진=pixabay.com>   ◆ 신강대국의 조건(1): 로마 “포용·기회·공영 국가를 건설하라”   기원전 216년 8월 2일 이탈리아 중부 칸나이평원은 로마군의 참혹한 시체로 뒤덮였다. 로마 정예군 8만명은 이날 북아프리카 도시국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끈 5만명의 병사와 단 한 번의 전투로 거의 전멸하였다. 사실상 대학살 당한 셈이다. 로마군은 유럽 역사를 통틀어 이보다 더 처참한 패배는 없었다. 더구나 로마는 이제 자신을 지킬 어떠한 병력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변방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대제국이 되었을까?   로마와 카르타고는 칸나이전쟁 이전에 지중해 패권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공략하여 지중해를 장악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이를 되찾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그것은 5만여 정예병을 차출하여 알프스산맥을 넘어 북이탈리아를 통해 로마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산을 넘는 과정에서 추위와 동상으로 절반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니발은 로마연합 동맹군들을 격파하여 병사들을 포섭하고 다시 5만명이 넘는 대병력을 갖추었다.   한니발은 칸나이전투에서 로마군을 대격파하여 일약 세계적 명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 본진을 치지 않고 남하하였다. 병력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로마연합의 다른 동맹국들이 한니발에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해 진퇴양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열을 갖춘 로마군과 다시 격돌하였으나 패하였다. 로마군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전략을 연구하여 더 뛰어난 전략을 발휘한 것이다.   로마가 한니발에 칸나이전투에서 대패해 국가멸망의 위기에 몰렸으나 로마연합 동맹군이 합세하여 재건할 수 있었다. 만약 한니발의 계책대로 로마연합 동맹군들이 이탈하여 한니발과 합류했더라면 로마는 분명 멸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연합 동맹국들이 왜 한니발과의 동맹을 거부하고 목숨을 걸고 로마와의 동맹을 견고하게 지켰을까? 그것은 ‘로마시민권’ 때문이었다. 로마는 각 도시국가들이 동맹국으로 참여하면 로마 공화국의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로마는 심지어 노예들에게도 10년이 넘으면 해방시켜 자유민의 자격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로마인이 될 수 있는 시민권도 자동 부여했다. 로마는 로마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로마시민권을 부여한 것이다. 로마연합은 차별과 특권이 없는 ‘포용적 공화국’이었다. 개인의 혈통, 출신, 문화, 종교, 인종 등에 대한 어떠한 특혜나 불이익이 없었다. 이는 지금의 세계 패권국 미국과 아주 유사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세계 최강 로마연합 동맹국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같은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다른 도시국가들인 아테네, 그리스, 스파르타 등과는 전혀 달랐다. 이들 도시국가들은 이민족이나 다른 국가들에게 배타적,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모든 것을 바다처럼 포용하고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로마의 동맹국들에게 로마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바로 시민권이 있는 주인이었다. 심지어 식민지나 노예 출신의 자손들도 능력이 있으면 귀족이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로마는 모두의 나라가 되었고, 그리고 모두의 조국이 되었다.   이탈리아 변방의 작은 도시였던 로마는 BC 509년 공화국으로 건국되어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된 AD 476년까지 약 1천년간 대제국 로마시대를 구가했다. 로마가 1천년간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포용’ 때문이었다. 출신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로마연합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누구에게나 ‘로마시민권’과 ‘기회’를 주었다. 사람의 능력을 중시한 기회의 나라, 누구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꿈의 나라였다. 그 결과 로마연합은 세계 최고의 문화융성 국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녀는 여왕에 등극한 후 “세계를 지배하려면 해상을 장악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군개혁을 통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한 사람의 꿈이 영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것이다. 사진은 엘리자베스의 1588년 초상화다. <사진=EBS화면>   ◆ 강대국의 조건(2): 영국 “지도자 리더십이 미래를 결정한다”   16세기 세계패권국가 스페인은 영국보다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왜 스페인이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영국에 패하고 몰락했을까? 영국은 어떻게 무적함대를 거느린 세계 최강 스페인을 무너뜨리고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1558년 1월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잠든 영국’을 깨워 거인으로 키웠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인 왕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앤은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의 시녀였는데,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지 3년 도 채 되지 않은 1536년 5월 19일 참수당했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남편 헨리 8세가 처형을 지시했다.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로 취급 받는 등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25세에 마침내 영국 여왕에 등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극할 당시 영국은 종교문제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문제 등 엄청난 문제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더구나 영국 왕실은 매우 가난했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의 보물선을 탈취하는 해적을 보호해주고 해적들로부터 그 대가로 금품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화폐개혁 등 대대적인 국가구조 대개조를 단행했다. 특히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바다를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전함과 무기를 현대화하는 등 해군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했다.   그런데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하는 영국의 해적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더구나 이단적인 여왕이 이끄는 신교도 국가 영국은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펠리페 2세는 1백여 년간 누려온 과거의 승리만을 기억하고 상대를 과소평가한 채 영국 공격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1588년 8월 칼레해전에서 스페인 해군을 압도할 수 있는 무기와 전략을 개발하여 전통적 해전에 익숙한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스페인의 아르마다 무적함대는 육군 위주였다.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는 독실한 정통 가톨릭 신자로 변화를 거부했다. 반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상장악을 통한 세계지배’라는 국가비전을 내세우고 대대적으로 해군을 개혁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적출신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함과 함포는 물론 전략도 개발했다. 마침내 스페인 무적함대를 맞이하여 격침시켰다. 그리고 대영제국의 깃발을 곳곳에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녀가 어떻게 위대한 나라, 영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은 먼저 여왕이 된 후 국가비전을 명확히 했다. 그녀는 여왕 즉위식 날 이를 실현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즉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는 백성들과의 사랑의 결혼을 상징하는 반지를 꼈고, 무게가 3㎏이나 되는 무거운 왕관을 머리에 썼다. 이것은 여왕으로서 결혼을 하지 않고 오직 백성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약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재위 45년간 영국은 극빈국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영국 여왕은 해군개혁을 통해 칼레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과 스페인의 미래를 바꿔 놓았다. 세계 제국 스페인은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패와 논란도 있었지만 그녀가 죽은 후 몇몇 사람들은 ‘다시 그녀와 현실에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향수에 젖어 흠모하기도 했다. 그녀의 위대한 스토리는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살아 있는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몽골의 초대 황제인 칭기즈칸은 능력과 충성심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로마제국처럼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은 칭기즈칸의 동상 모습이다. <사진=EBS화면>   ◆ 강대국의 조건(3): 몽골 “전략이 세계를 정복하는 비책이다”   중앙아시아의 야만적인 유목민족에서 출발한 몽골이 어떻게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인류 역사상 최대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탁월한 전략’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몽골’이라는 말만 들으면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이 “순사가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는 경우와 비슷했다. 유럽인들에게 몽골군은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신출귀몰한 몽골군의 전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1241년 3월 24일 폴란드 지역의 중심도시였던 크라코프도 채 한 달을 못 버티고 몽골군에 점령당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800여 년 전의 몽골 침입을 매일 되새기고 있다. 성마리아 성당의 첨탑에 올라간 나팔수는 경고나팔을 분다. 그런데 항상 나팔은 중간에 멈추고 만다. 당시 나팔을 불던 나팔수가 몽골군이 쏜 화살이 날아와 목에 꽂혀서 더 이상 경고나팔을 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라코프를 공략한 몽골군은 이번에는 독일로 향했다. 1241년 다뉴브 강변을 순찰하던 몽골군 장교 한명이 생포된다. 독일 빈의 군대는 이 장교의 정체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영국인이었다. 영어뿐 아니라 아랍어와 몽골어까지 능숙하게 할 줄 알았던 지식인이었다. 이처럼 몽골군은 점령한 지역을 관용과 포용으로 모두 동화시켜 우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대신 거부하면 잔혹하게 짓밟았다.   몽골군의 최초 규모는 10만명 정도로 아주 작았다. 몽골제국의 전체 인구는 고작 100만명 정도였다. 당시의 몽골은 양육강식의 세상이었다.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1162~1227)의 아버지 예수게이 역시 타타르족에게 암살당했다. 아버지가 죽자 어린 칭기즈칸은 친족과 부족에게서 버림받았다.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칭기즈칸은 씨족 중심의 사회가 아닌 동료들의 충성심과 우정을 더 믿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능력과 충성심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원칙을 세웠다. 혈연, 씨족, 부족사회였던 몽골 초원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방식을 적용했다. 과거에는 패하면 모두 몰살시켰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패자를 자신의 동족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정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몽골 초원의 강자가 되는 핵심 전략이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칭기즈칸의 관용적인 자세는 그의 후계자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이것은 로마제국처럼 몽골제국을 세계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100만명의 몽골인들이 세계 인구 3분의 1인 1억명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몽골은 빠른 말을 이용해 소통하고 지배했다. 몽골군은 정벌전에서 연전연승했다. 그 승리의 핵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였다. 전투식량인 ‘보르츠’는 가축을 잡아 말린 육포와 마른 젖 덩어리로 최대한 경량화하여 개인이 소지하도록 했다. 속도와 간편함으로 적을 유린한 것이다. 몽골군은 말 위해서 식사하고, 잠을 자며, 신속한 기동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스피드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몽골군은 관용과 포용으로 점령한 모든 지역의 사람들과 기술들을 활용하여 연합군을 편성하였다. 그래서 몽골군은 다국적군이었다. 전투기술과 신무기들도 곳곳에서 도입하였다. 또한 동과 서,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였다. 도로망과 역참제는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칭기즈칸의 경청 리더십과 이를 활용한 창조적 변칙 전략은 정복과 제국 건설의 핵심 수단이었다. 몽골제국은 철저히 전략으로 만들고, 전략으로 유지되었다.   고대국가가 태동한 기원전 500여 년 전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 속에 무수한 국가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몇몇 강대국들이 등장하여 작게는 수백 년간 길게는 1천년간 세계패권을 휘어잡았다. 그렇다면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세계미래신문>    ◆ 21세기의 국가 흥망: “융합·창조로 더 나은 미래를 열어라”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변방에 위치한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이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신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국가목표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를 위한 국가목표 설계는 물론 상상력조차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생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허황된 것’이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탈리아 변방 로마는 물론 유럽의 작은 섬나라 영국, 심지어 황량한 초원국가 몽골도 세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 나라들은 대한민국보다 절대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로마는 연합을 위한 ‘포용’, 영국은 ‘리더’의 혁신, 몽골은 창의적 ‘전략’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이들 강대국의 3대 조건을 갖춘다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강대국의 비밀을 확인해 보자. 3000여년의 국가 역사에서 흥망성쇠를 결정한 요인들은 무엇이었을까? 흥성한 국가들은 포용, 관용, 기회, 다양, 창의, 혁신, 충성, 헌신, 열정이 강했다. 반면 쇠망한 국가들은 독선, 차별, 배척, 오만, 파벌, 정쟁, 탐욕, 타락, 배반이 두드러졌다. 인구나 영토 등은 세계 패권국이 되는 데 특별히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국가 붕괴의 핵심 요인은 정쟁과 타락·분열, 융성 요인은 혁신과 헌신·충성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 최강의 신강대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군사력이나 폭력적 강요 없이 다른 국가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정신적, 사상적, 문화적 힘을 가진 위대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즉,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열 사상, 철학을 토대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최고의 문화시대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홍익사상과 한류문화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단합하여 “한번 해보자”는 결심만 하면 가능할 것이다.   둘째는 남북국가연합을 조속히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몽골, 이스라엘, 베트남, 러시아 등과 세계국가연합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초저출산국이자 초고령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국가 존망이 달린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마처럼 포용을 기반으로 국가연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탈북인이나 조선족 등 자기 동포들조차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절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없다. 국가구조 대개혁과 국민의식 대각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라는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협업, 공유, 창조의 국가연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강대국을 “많은 인구, 넓은 영토,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을 갖춘 국가”라고 정의했다. 이런 강대국은 과거 패권주의적 제국이다. 신강대국은 권력이 아닌 사상과 문화, 관용으로 다양한 인종과 집단을 자연스럽게 융화시켜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게 만드는 나라다. 한국은 IT를 기반으로 세계적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인류 모두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신강대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인류는 이상기온 등 자연환경의 악화, AI로봇 등 과학기술의 진화, 저출산 등 인간의식의 변화, 국제질서의 혼란 등 국가안위의 심화라는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으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는 지속 가능한 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이끌 새로운 리더, 새로운 사상, 새로운 혁신을 갈망하고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전면 등장할 때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21세기 신강대국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 국가안보
    • 공의
    2019-09-12
  • [미래창조]1인 가구·저출산 증가 “지금 대한민국은 자살 중“…그 미래는?
    “제대로 된 나라를 세워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수만명이 뭉쳤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싸웠으나 일본군의 신무기 앞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신은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SBS드라마 ‘녹두꽃’>   [세계미래신문=장영권 대표기자]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요즘 방영중인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며 민초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외적의 무리를 몰아낼 것이다”며 양반과 부호 방백(관찰사), 수령에게 고통 받는 민초들에게 동학혁명의 대의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동학혁명은 125년전인 1894년 억압과 차별, 멸시를 받아온 이 땅의 민중들이 조선 강토를 피로 물들이며 봉건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근대국가의 신 새벽을 열어젖힌 대사건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자유와 평등, 민족 자주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동학혁명은 핵심 인물 전봉준만의 영웅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20여만명의 혁명군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외친 분노와 항거, 희망을 담은 우리 선대들의 이야기다.   동학혁명은 일종의 건국혁명이었다. 전봉준의 지휘 아래 서울로 진격하던 혁명군은 공주 우금티에서 조·일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혁명군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어도 항전했으나, 일본군의 첨단 신무기를 이겨낼 수 없었다. 동학혁명군의 꿈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정신은 살아남아 3·1건국운동, 항일건국투쟁, 4·19건국의거, 6월항쟁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모두가 “나라다운 나라를 건국하여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피로 쓴 근현대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였다.   과연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여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어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가진자와 없는자, 사대와 자주 등의 대립과 갈등으로 허우적대고 있다. 더 나은 미래의 꿈과 대한민국 건국의 완성을 향한 동학혁명군 같은 도전은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 서울역, 시청앞, 국회 등은 국가의 미래를 여는 힘찬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갈등의 현장이 되어 군살처럼 견고해 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공동체가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시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현재의 변화, 이동의 방향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 갈등 및 남북 대립, 빈부격차 확대, 저출산·고령화, 1인가구 확대, 저성장 경제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미래신문>이 빠른 속도로 변화, 이동하고 있는 시대에 <제1부: 자연환경의 악화>, <제2부: 과학기술의 진화>, <제3부: 인간의식의 변화>에 이어 <제4부: 국가안위의 심화>에 대해 분석해 본다.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며 민초들에게 던진 말이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사진=SBS드라마 ‘녹두꽃’>   ◆ 한국병의 현황: 이념 대결, 자살, 저출산 등 중병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일으킨 이념전쟁이다.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3년1개월 동안 이 땅을 피로 물들이며 최소 385만명이 희생됐다. 한국전쟁은 현재 ‘정전 상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더구나 남한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사실상의 내전을 계속해 왔다. 이날도 광화문, 서울역 등에서 총칼 없는 이념전쟁이 벌어졌다.   네이버 등 포털의 정치뉴스 댓글을 보면 절망적이다.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국회가 한 술 더 떠서 더욱 흥분한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자기만 선이고 남은 다 악이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조금도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 품격’은 사라진지 오래다. 조금만 틈만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다. 심지어 욕하는 사람이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 서로가 잘 했다고 박장대소한다.   국가안위가 흔들리는 사이 서민들은 매일 절망한다. 영세업자와 중소기업들은 경기불황으로 빚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5월 20일 의정부 가족 3명, 5월 7일 김포 모자 2명, 5월 5일 어린이날 시흥 일가족 4명 등 생활고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유난히 많았다. 국가경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미혼, 이혼 등에 따른 1인가구의 증가가 저출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2019년 6월 23일 발표한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1인가구는 약 562만가구에 이른다. 이는 전체 인구 5142만명중 10.9%, 100명 중 11명은 혼자 살고 있다. 전체 가구 수로 기준을 바꾸면 그 비중은 28.6%로 한층 더 커진다. 2030년에는 720만가구로 2017년보다 28.1% 늘어날 전망이다. 1인가구 증가세가 예상치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하기 힘들다. 이로 인해 취업포기에 이어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가 줄을 잇는다. 작년 합계출산율 0.98을 기록했다. 이는 여성 1명당 평생 동안 아이 1명도 안 낳는다는 얘기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지난 2006년 이후 13년간 최소 143조원을 투입해지만 실패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월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73.4%가 “청년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하여 희망을 주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빈부의 대결이 아닌 빈자와 빈자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희망이 아닌 공포 같은 현실이다. <사진=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한국병의 대책: “전봉준 장군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자살’중이거나 ‘국가멸망’중이다. 국가안위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구하기’를 위한 대책이 무엇일까? 먼저 정부와 국회 등 기성 정치권이 현재의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노동계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서로가 대화와 협상이 실종된 채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있다. 국가공동체는 뒷전이고 그들만의 이익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기대난망이다.   종교계는 어떨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계가 오히려 내부문제로 고소고발 등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화, 극우화되어 오히려 공동체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신뢰의 종교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한국병을 치유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어느 누구도 한국병 치유에 별 관심이 없다. 각자 도생에 서로 정신이 없다. 모두가 분주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국가공동체의 생존과 미래에는 무관심하다.   다행히 이따금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 전해진다. 6월 13일 37년간 간호사의 길을 걸어온 고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전 재산을 모교에 쾌척했다. 고인은 평소 추운 겨울을 외투 한 벌로 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6월 6일에는 동대문구 전농1동에서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전 재산 1억8000여만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진짜로 기부해야 할 정치인, 기업가, 종교인 등 사회 지도자들은 없다.   사실 많은 정치인과 기업가, 종교인 등은 개인의 치부를 위해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세계최고 부자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의 전 부인인 매킨지 베조스는 5월 29일 자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월가 사모펀드 황제’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는 6월 19일 영국 옥스퍼드대에 1억5000만파운드(약 2217억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서구의 유명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대한민국은 양심이나 정의에 호소하여 한국병을 치유하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한국병의 주요 원인이 개인의 게으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조적, 제도적 탓이 더 크다. 입시나 취업 등이 계급화 되어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와 억압, 약탈 등이 철저히 구조화되었다. 즉 한국은 빈부가 2대8의 사회로 계급화, 구조화되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득권층에 공정한 배분, 기회의 공평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전봉준 장군을 살려내어 길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 시멘트벽을 쌓아 놓았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먼 길을 돌아 등하교해야 했다. <사진=SBS>   ◆ 한국병의 미래: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생충>은 2019년 5월 25일 폐막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정했다는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빈부격차의 불평등 문제였다. 이 영화가 특히 세계적 관심을 끈 것은 약자끼리, 빈자끼리의 생존투쟁이었다. 기존의 대립개념인 빈부간의 대결이 아니었다. 약자들, 빈자들끼리의 싸움이었다.   현재 세계 각국은 물론 인류사회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무엇일까? 세계미래신문이 특별기획으로 앞에서 언급한 <제1부: 자연환경의 악화>나 <제2부: 과학기술의 진화>, <제3부: 인간의식의 변화>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바로 국가안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빈부격차, 불평등 구조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부자와 빈자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빈자와 부자의 생활공간은 넘을 수 없는 ‘철벽’으로 구분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안위의 심대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혁명의 횃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불평등 문제는 급속한 미래 변화와 이동 속에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불평등 문제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첨예한 이데올로기 문제는 우파 대 좌파가 아닌 기득권층과 반기득권층의 대결이다. 이것은 이제 한국에서 서민들에게 꿈꾸는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을 의미한다. 개천에서 용도 나오지 않는다. 기득권층은 약자나 신인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할 것이다. 국가구조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대결로 들어섰다.   한국의 여야 거대 기득권정당들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과 영세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거짓’이다. 이들은 국회를 3개월 가까이 공회전시키며 민생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그런데도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은 “국회를 바꾸자”라고 한 마디도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약자들이 기득권정당에 ‘기생’하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넘치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거대한 인공장벽을 세우고 있다. 부국의 나라에 빈국의 국민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부국과 빈국을 구분하는 국가장벽이다. 대한민국도 이미 오래전부터 부자들이 빈자들의 출입이나 통행을 하지 못하게 벽을 쌓아왔다. 앞으로 이런 행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전봉준 장군이 다시 현시대로 부활한다면 “고통 받는 민초들아!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고 다시 외칠 수 있을까? 그리고 동학혁명군처럼 민초들이 목숨을 걸고 참여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장영권 대표기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소위 4대 미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미래전략을 강구해 왔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생존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미래지도>, <지속 가능한 평화론>,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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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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